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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총 게시물 : 16
  • 형제봉의 전설
  • 관리자 | 전설/설화 | 2006-07-03 | 1438 hits
  • 2군사령부 동쪽에 두개의 산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하나는 좀 높고 하나는 좀 낮아 사람들은 이것을 형제봉이라 부른다. 이 두 봉오리에 형제봉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전설 때문이다. 아득한 옛날 이곳에 힘센 장군 남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둘이 서로 산쌓기 내기를 했다. 오빠는 옷섶으로 흙을 날라다 산을 쌓기 시작했고 여동생은 치마폭으로 흙을 날라 산을 쌓기 시작했다. 내기의 방법은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룻동안 누...  MORE
  • 영험서린 느티나무
  • 관리자 | 전설/설화 | 2006-07-03 | 1366 hits
  • 수성구 수성1가 옛날 대륜중고교 남쪽 담장밖에 서있는 아람드리 느티나무 두 그루는 수령이 4백여년이 넘는 것으로 오랜동안 동네 수호신으로 추앙받고 보호 받는 나무이다. 즉 이 느티나무 역시 어느동네의 그것처럼 당목으로 음력 정월 14일 제사를 지내왔다. 그러나 이나무 앞에서의 제사는 다른 동리의 그것보다 더욱 엄숙한 절차로 치러졌다. 제사는 먼저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¹와 제관²을 뽑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매년 음력 정월 7일 동네의 어른들이 ...  MORE
  • 두사충(杜師忠)과 모명재(慕明齋)
  • 관리자 | 전설/설화 | 2006-07-03 | 1729 hits
  • 대구시내에서 경산으로 통하는 대로변 오른쪽 형제봉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모명재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원병으로 왔던 명나라 장수 두사충의 후손이 선조를 위해 세운 것이다. 두사충은 중국 두릉사람으로 임난이 일어나자 명나라 제독 이여송과 우리나라를 도우기 위해 나왔다. 그가 맡은 일은 수륙지획주사라는, 지세를 살펴 진지를 펴기 적합한 장소를 잡는 임무였다. 따라서 그는 이여송의 일급참모로서 항상 군진을 펴는데 조언해야 했고 조선과의 합...  MORE
  • 고모령(顧母嶺) 전설
  • 관리자 | 전설/설화 | 2006-06-28 | 870 hits
  • 옛날 고모령(顧母嶺) 부근에는 두 남매를 거느린 가난한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지나가면서 “전생의 공덕이 모자라서 가난을 벗지 못하는구나.”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날부터 세 식구가 산을 하나씩 쌓기로 하였다.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을 한 뒤, 산 높이를 비교해 보았다. 오빠가 쌓은 산이 가장 낮았다. 그 까닭은 어머니와 딸은 치맛자락으로 흙을 날랐으나 오빠는 저고리 앞섶으로 날랐기 때문이다. 이것을 본 아들은 ...  MORE
  • 황금동의 못안과 봉천(奉天)
  • 관리자 | 전설/설화 | 2006-06-28 | 698 hits
  • 손홍량 어른이 죽은지 450년 쯤 '못안'과 뒷산너머 '봉천'에 이런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곳 손씨 집안 어른 중에 손아무개라는 어른이 살았는데, 늦게사 아들 하나를 얻었다. 이 아들이 나이가 차서 장가를 보내기 위해 이 마을 저마을로 색시감을 구하러 다니다가 마침내 뒷산너머 마을에 이쁜 딸을 가진 김아무개라는 집안을 찾았다. 그래서 사주단자를 주고 받고 혼례날짜를 자고 분답스럽게 혼례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혼례식을 올리기도 전에 마을에서는 ...  MORE
  • 효자 하광신(夏光臣)
  • 관리자 | 전설/설화 | 2006-06-28 | 608 hits
  • 수성구 만천동에 있응 하효자 정려각은 대구는 물론 경북지방 일원에서 가장 오래된 효자비의 하나로 고려때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하광신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위해 조정이 정문을 내려 세운 것이다.하광신은 달성 하(夏)씨로 달성 하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 대도독이었던 하흠(夏欽)인데 고려때 우리나라에 정착했다.이후 그 아들 하용(榕)이 고려를 침공하는 오랑캐를 무찔러 큰 공을 세우자 조정에서 달성군을 봉했는데 이때부터 하씨들이 대구부근에...  MORE
  • 고산(孤山)
  • 관리자 | 동명유래 | 2006-07-04 | 1045 hits
  • 삼한시대부터 조그만 나라의 일부였다가 신라에 합쳐졌으며 신라 경덕왕(741년) 장산군(獐山郡) 읍서면(邑西面)이었는데 고려 현종(1018년)때는 경주군 서면에 속했고 고려 충선왕(1308년)때는 옥산부(玉山府)서면이라고 불렀다. 조선 선조(1577년)때 경산현(慶山縣)이 대구부에 속하게 되자 대구부 부동면(府東面)이 되었다가 경산이 다시 현이 되자(1897년) 경산현 현서면이 되었다.조선 고종 대 경산군 서면이라 고쳐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산...  MORE
  • 범물동(凡勿洞)
  • 관리자 | 동명유래 | 2006-07-04 | 604 hits
  • 동네 명칭 유래에 대해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과거에 범이 많이 살고있으면서(실제로 과거에는 밤만 되면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함) 계곡밑에 샘이 있어 범물동이라고 하는 설이 있고, 하나는 인근산(용지봉 약680m)위에서 내려다본 계곡의 형태가 '범(凡)'자 형태라서 범물동이라는 설도 있으나 둘다 확실치 한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달성군 수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10월 1일 부령(府令) 제195호로 달성군에서 대구부에 ...  MORE
  • 지산동(池山洞)
  • 관리자 | 동명유래 | 2006-07-04 | 674 hits
  •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전 치산(淄山)고을 정우복 선생이 모산골밑 둔덕지에 골을 걸쳐막았는데 (현재 능인고 및 녹원맨션 자리) 못을 막아놓았으나 못에 물이 들어올 때가 없어서 산허리를 가로잘라 물이 고이게 했다고 하며 그후 그 없적으로 인해 용이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이러한 내력을 비석에 새겨 현.능인고등학교 자리에 보전하였으나 6.25사변때 파손되어 현재는 없어졌다. 현재 범물동에 있는 천주교 성당 공동묘지 산의 형곡이 뫼의 주둥이 처럼...  MORE
  • 두산동(斗山洞)
  • 관리자 | 동명유래 | 2006-07-04 | 502 hits
  • 두산동은 대구부(大邱府) 수동면(守東面)지역으로 '말미' '말뫼'라 하였으며,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두산동(斗山洞)이라 하여 달성군 수성면(壽城面)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10월 1일 대구부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두산동 명칭은 말미산(독메산)이 있으므로 생겨난 것이며 말미산 뒤로 물이 넘어 가므로 '물넘이'라고 하며 또는 벌판에 있으므로 '불뫼'라고도 한다고 하나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아침 일찍 부녀자가 빨래 하고 있으면 산이 이동...  MORE
  • 파동(巴洞)
  • 관리자 | 동명유래 | 2006-07-04 | 611 hits
  • 예로부터 살기좋은 고장이라고 하여 '1파 2무'(첫째로 살기좋은 곳은 파동이며 둘째로 살기좋은 곳은 무태이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려한 산수를 가지고 있던 마을로서 옛날 수성못 입구에서 가창까지 길이 곧다고 해서 '니리미'라고도 불리었으며 '파잠' '파집'이라고도 불리웠다. 1914년 3월 5일 대구부 달성군 가창면에 편입되었다가 1958년 1월 1일 달성군에서 대구시로 편입되었고, 1980년 4월 1일 대구시 수성구 파동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다. 파...  MORE
  • 상동(上洞)
  • 관리자 | 동명유래 | 2006-07-04 | 497 hits
  • 신천을 사이에 두고 남구 봉덕동과 인접하고 있는 상동은 약500여년전 수성평야의 농막촌으로 형성된 마을로 진씨와 손씨가 집단거주를 했었다. 1394년 수성현에 속했는데 수성현이 대구현으로 편입되자 상동도 대구현의 일부가 되었다.1910년 대구현이 대구군이 되고, 1910년 대구군이 대구부로, 1914년 다시 수성구 수성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37년 대구부에 재편입되었다. 결국 1963년 1월 1일자로 대구시 동구 상동의 명칭을 얻었고, 1980년 4월 1일 대구시 ...  MORE
  • 중동(中洞)
  • 관리자 | 동명유래 | 2006-07-04 | 497 hits
  • 약 500여년전 신천을 따라 수성평야에 형성된 마을로 80여년전 마을 규모는 경주이씨 160호, 추계 추씨 140호, 경주 최씨 53호, 초계변씨 50호 등 성씨별로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인구는 2,400명 정도로서 전 가구가 농업을 주업으로 하면서 거주하였다. 1394년 수성현에서 대구현으로 편입되고, 1910년 대구군에서 대구부로 속했다가 1914년 4월 1일 대구부(大邱府)서 달성군(達城郡) 수성면(壽城面)으로 분리되었다. 1937년에 다시 대구부에 편입되었으며, 1963...  MORE
  • 황금동(黃金洞)
  • 관리자 | 동명유래 | 2006-07-03 | 542 hits
  • 본래 대구부(大邱府) 수북면(守北面)의 지역으로 황청리(黃靑里)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황청동(黃靑洞)이 되어 달성군(達城郡) 수성면(壽城面)에 편입되었으며, 1938년 10월 1일 대구부(大邱府)에 편입되었다. 약 350여년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우리지방에 궐기했던 의병장 손처눌(孫處訥)선생이 임란당시 피난하여 이 마을을개척하여 곡식을 심으니 푸른산이 주위를 에워사고 들녘의 곡식이 황금물결을 이룬다 하여 황청(黃靑)이라 하였으나, ...  MORE
  • 만촌동(晩村洞)
  • 관리자 | 동명유래 | 2006-07-03 | 528 hits
  • 만촌동은 본래의 이름은 '늦이'라 하였다. '늦이'의 '늦'은 늦다(晩, 遲)라는 뜻이며 '이'는 원래 인칭대명사이나 고어의 '리(里)'의 음차(音借)로 보아야 한다.이곳 주민들은 '늦이'를 한자로 지잉(遲芿)(遲=訓借, 芿=音借)로도 표기하였다. 따라서 만촌(晩村)의 촌(村)은 '리(里)'와 같은 '마을'이란 뜻이다. 이와같은 이름을 사용하게 된것은 예로부터 이곳은 달성(達城)하씨(夏氏), 달성(達城)서씨(徐氏)등이 문호(門戶)를 차려놓고 강학(講學)에 힘쓰고 학문...  MORE
  • 범어동(泛魚洞)
  • 관리자 | 동명유래 | 2006-06-28 | 1225 hits
  • 범어동은 본래 대구부 수북면의 지역으로서 조선때 범어역(泛魚驛)이 있었으므로 범어 또는 역촌(驛村)이라고도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달성군 수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10월1일 대구구역이 확정됨에 따라 대구부에 편입되었다. 범어동을 한자로 泛魚 , 凡魚 , 凡於로 쓰여져 내려온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泛魚洞"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 유래를 보면 1500년 초 철원부사를 지낸 구수종이 정착하면서 일군마을이라고 하는데 마을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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