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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문화재와 자취 2,주요 유적・유물
suseong | 2011-07-21 17:09:13

 

2,주요 유적・유물

국가와 대구시가 문화재로 지정한 유적 유물 이외의 지질유적,성곽,봉수대,산업유적,생활주거유적,유물산포지,고분 등 주요 유적 유물을 망라해 기록한다.

가, 지질유적

♦대구욱수동 공룡발자국

욱수천의 하천 바닥 퇴적암에 화석화된 공룡발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있다. 퇴적암의 각기 다른 두개의 지층면에서 각각 한개의 공룡발자국 보행열이 나타나며 두 지층면의 높이 차이는 12cm이다.

이들 발자국의 주인공인 공룡은 중생대 백악기에 백악기에 네 발로 걷는 초식 용각류 공룡이다. 발자국은 앞발과 뒷발이 함께 나타나나 앞발의 것은 뒷발에 비해 매우 희미하다. 발자국의 크기는 앞발의 경우 길이와 폭이 각각 12cm,16cm이며,뒷발은 각각 25cm와 19cm이다. 발자국 보행열에서 구해본 걸음너비는 약 52cm이며, 걸음 속도는 시속 약 3.4km로 계산된다. 또 어깨에서 엉덩이까지의 길이는 약 115cm로 추정된다.

이곳의 퇴적암 지질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억년전 중생대. 하부공룡들의 발자국들이 화석화 과정을 거친후 풍화,침식작용에 의해 지표에 다시 노출된 것이다.이 공룡발자국은 대구시내 박두광 교사(성명여중)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나,성곽

♦욱수동산성

욱수동 산 163일대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이 성은 경산에서 서쪽으로 약 2km,고산산성에서 남서쪽으로 약 4km지점에 있는 자양산(紫陽山)에 위치해 일명 자양산성(紫陽山城)이라고도 부른다. 고산산성과는 넓은 들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어 이 두 산성이 전략적으로 함께 이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성 주변에는 노변동 욱수동 등에 고분군이 동북으로 분포되어 있고, 사월동 지석묘군,시지동 지석묘, 매호동 지석묘 등이 북쪽 약 2km지점에 펼쳐져 있어 이들 지석묘가 만들어졌던 시기로 추정되는 삼국시대의 주거인 들이 만든 성곽으로 보여진다.

이 성은 둘레 약 2km의 포곡식(包谷式)산성으로 북면은 자연적인 암벽과 급한 경사면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남동쪽 면은 석축을, 남서쪽 면은 석토축(石土築)을, 그리고 북쪽 면의 능선 일부에는 토축을 하였다. <동국여지승람> 권27 경산현 고분조에는 “古浦城在縣西九里 石築周三千一百七十尺 今廢(옛 포성은 현의 서쪽 9리에 있었고, 그 성의 석축 둘레가 3천일백칠십척이었는데 지금은 페했다)”고 기록돼있어 욱수산성을 옛날의 포성(浦城)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 오래 살았던 주민들은 이 산성을 임진왜란 당시 경산지방의 의병장 박응성(朴應成)이 쌓은 자산산성(紫山山城)으로만 알고 옛날의 포성이었던 사실은 전혀 몰랐다. 물론 옛 포성이 반드시 이 산성과 일치한다는 확증은 없지만 이 지역에는 이 곳 밖에 산성이 확인되는 곳이 없으므로 같은 산성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이 성이 축조되었으나 그후 방치되어 폐성상태로 있다가 임진왜란을 맞아 새로 수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동산성(城洞山城)

이 산성은 수성구 성동 산1-50번지 지역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이 성은 현재는 그 소재지가 대구광역시에 편입된 지역이나 옛 행정구역으로는 경산군 고산면이었기 때문에 고산토성(孤山土城)이라고도 부른다. 이 성이 축조되어있는 곳은 좁은 의미의 대구분지를 벗어난 구릉지와 평야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성은 주로 금호강과 그 지류인 남천의 합류지역에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에 접해있고 서쪽 일부만 계곡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구릉지와 접하고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5km이고 포곡식과 산정식(山頂式)이 혼합된 형태다. 처음부터 이같은 형태로 축성을 했는지 아니면 처음 축성후 이차적으로 다른 형태를 절충 결합한 것인지 지금의 외양만으로는 알 수 없다

성이 있는 구릉의 남쪽산록에는 고산고분군이 있고 동쪽 산기슭에 면하여 흐르는 남천을 따라 약 1km 쯤 올라간 상류쪽 구릉에는 욱수동고분군이 있어 이들 고분군이 축조된 시대에 만든 성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또 남천지역에는 고인돌이 다수 분포한다. 그리고 이 성 내부에 무문토기와 삼국시대의 와질토기가 분포하는 점으로 보아 이 구릉에는 성을 쌓기 전부터 어떤 세력집단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마을 사람들은 삼국시대 초기에 토성을 쌓았응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계곡쪽을 제외한 다른 쪽은 경사면을 깍아 편축법(片築法)으로 쌓았고, 모산못이 있는 남쪽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쌓았다.

다, 봉수(烽燧)

♦대구 파동 법이산(法伊山) 봉수

수성구 파동 산 23일대에 소재한 조선시대의 봉수다. 해발 333m의 법이산 정상에 위치한 이 봉수대는 규모가 작은 간봉이다. 봉수 둘레는 40m정도이고 석단으로 쌓은 흔적은 남아있으나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다. 현대적 통신 수단이 없을 때 연기와 불로 위급한 상황을 알렸던 이 봉수는 남쪽으로부터 알려오는 정보 사항이 밀양-청도를 거쳐 전달되면 북쪽의 경산-하양-영천-의성으로 이어주는 중간 연락 역할을 했다. 가까이는 남쪽의 팔조령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의 경산 성산봉 봉수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는데 서로간의 거리는 8km이다.

라, 산업유적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유적

대구시 욱수동 산 48-1번지와 경산시 옥산동 671-1번지 일대에 남아있는 삼국시대의 토기를 굽던 요지(窯址)이다. 유적은 삼덕동-시지택지간의 월드 컵로를 경산에서 대구쪽으로 따라가다 대구시와 경산시의 경계지점의 우측에 보이는 나지막한 구릉지에 있다. 이 유적은 이전부터 경산시 중산동 토기요지로 알려져왔는데 행정구역의 변화로 수성구에 속하게되었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차에 걸쳐 이 요지를 조사한 바 있다. 1998년 1차 발굴조사에서는 3기의 삼국시대 가마와 삼국시대 석실이 드러났으며,2000-1001년의 2차조사에서는 삼국시대 가마 38기,수혈,폐기장,구상유구 등 73기, 삼국시대 석실묘 18기, 석곽묘 3기, 토광묘 1기 등 총597기가 발굴되었고 토기류,자기류,금속기류 등2,226점이 출토되었다.

현재는 토기가마가 집중적으로 분포되고 있었던 동남쪽 사면일대에 5기의 토기가마가 정비되어 지하에 원형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 유적에서 발굴된 토기가마 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1기는 국립대구박물관에 이전 보관하고 있다.

♦대구성동 와요지(瓦窯址)

수성구 성동 산32-2번지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기와굴 터이다. 이 와요지는 성동고분군이 위치한 남쪽능선의 정상부에 있다. 정상부의 능선을 따라 동편으로 나있는 작은 길의 북편에 치우친 곳에 3기의 와요지가 분포하고 있다. 가마는 내부가 함몰된채 파괴되어 있는데 잘려진 요지의 벽면에 벽면조각과 기와조각이 박혀있다.

규모는 길이 8m, 폭 4.5m이고 함몰부 폭은 1.5m정도다. 자연사면을 따라 축조된 남-북 장축(長軸)의 등요(登窯)로 추정된다. 약 20m간격으로 3기가 동-서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에는 벽체의 조각과 기와조각이 흩어져있다.

♦대구 가천동 공방지(工房址)

수성구 가천동(佳川洞) 98번지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수공업적 산업생산 유구이다. 고모역에서 경산 방면으로 600m정도 가다가 만나게 되는 가천동 마을의 동북편 구릉에 공방유구들이 분포되어 있다. 조그마한 이 구릉에는 상당한 고분군들이 조성되어 있는데 공방유적은 이 고분군의 서편끝자락에 위치하며 해발 약40m에 있다. 구릉지라하나 거의 평지에 남아있는 이 공방유구는 근래들어 경지정리를 하면서 복토를하거나 그기에 경작을 하는 바람에 윗부분의 유구는 완전히 교란되었다. 그럼에도 현 지표에서 약 70cm정도 흙을 깍아낸 자리에서 유구들이 확인되기도 했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9년 5월 10일부터 7월 31일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수혈유구 18기,노지 1기,구상유구 3기가 확인되었고 주혈 120여개가 남아있었다.

♦대구고산지역유적

수성구 시지동,매호동,신매동,사월동,옥산동,성동,노변동 일대에 위치한 청동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 까지의 주거유적 및 분묘, 지석묘 등이다. 고산지역 일대는 성암산 안산 대덕산등의 남부산지의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에 의해 형성된 선상지인데 이 선상지를 가로 질러 흐르는 시지천과 욱수천 등 소하천 주변에 선사시대 주거유적과 지석묘 유적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남쪽과 동쪽의 조그마한 구릉지엔 삼국시대의 생산유구와 분묘유적이 위치한다.또한 유적의 북쪽과 남쪽으로는 성동산성과 욱수산성이 펼쳐져있다. 이렇게 고산지역의 유적은 생활유적을 중심으로 주변에 고분유적, 성곽유적 등이 공간적으로 구분되어 분포해 특징적 배치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범어동379 유적

범어동 379번지 일대에 분포한 조선시대의 주거유적이다. 범어네거리의 남동쪽 독립된 구릉일대에서 발굴되었다. 확인된 유구는 조선시대 구상유구 2기,수혈유구 12기,우물 1기와 소토유구 1기 등이다.

♦대구황금동 산 70-3유적

이 유적은 수성구 황금동 산70-3 및 25-2 일대에 남아있던 조선시대의 생활유적으로 황금동에서 만촌동에 이르는 길이 약 2.8km,폭 30m의 도로 건설구간에서 발굴된 것이다. 이 지역은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을 이루며 경북고등학교 동편의 두리봉(해발 216.5m)에서 북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9년4월21일부터 1995년5월12일까지 발국조사한 바에 의하면 부정형 수혈유구 5기,건물지 1기,집석유구 2기,다수의 주혈이 확인되었다. 분청사기 4점을 비롯한 다수의 자기편과 토기편 및 스래그가 유습되었다.

♦대구상동89-2유적

이 유적은 수성구 상대동 89-2 일대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의 주거유적이다. 수성초등학교 현대화 재개발 시범학교의 건립사업부지에서 드러난 이 유적은 대구시의 동남쪽 신천 북도문화재연구원이 2001년 12월 26일부터 2002년 7월 13일까지 두차례의 발굴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에서부터 근대에 일기까지 시대적으로 다양한 유물 유적들이 나와 연구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발굴된 유적 유물로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20동,수혈유구 4기, 구상유구 2기, 주혈 2기가 확인되었고 ,삼국-통일시대의 주거지 9동,수혈유구 1기,우물 2기가 확인되었다. 또 고려-조선시대의 주거지 1동, 수혈유구 63기,노지, 적심, 주혈군 등이 확인되었으며 그 외 근대로 추정되는 우물 4기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구순각목, 중구연단사선문토기, 구순각목문토기, 선착, 발형토기, 방추차 등 토도류 353점, 옥석류 23점, 금속류 26점 등 총 402점이 출토되었다.

♦대구상동 162-12유적

이 유적은 상동162-12지역의 청동기 시대 주거유적이다. 이 곳은 시천범람원으로 현재는 신천 동편의 대구한의대 병원 남동쪽 모서리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데 조사결과 유구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 통일신라시대 유물 1기, 주혈 1기, 조선시대 건물지 1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무문 토기, 반월형 석도, 대부완편,청동유물 2점, 와편, 자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대구상동723 유적

상동 723 일대의 청동기시대 생활유적이다. 이 유적은 서쪽 수성못 가장자리에서 약 50m 떨어진 현 유희시설 수성랜드 부지 내에 있다. 법이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북서면 산 기슭에 해당되는 곳이다.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2005년 5월 17일부터 5월 27일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청동기 구(溝)3기, 수혈 7기, 조선시대 구 1기, 주혈 17개가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구 내부에서는 무문토기편 10점과,무문토기저부편, 홍도편이 수습되었다.

♦대구파동 암음(岩蔭)유적

이 유적은 수성구 파동 산 112지역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유적이다. 유적은 신천의 중상류지역으로 유적 양쪽에 법이산과 산성산이 솟아있어 신천을 따라 긴 협곡을 형성하는 중간지점의 서편에 위치한다. 바위그늘 유적이 있는 곳은 산성산이 남북으로 뻗어있는 중간 쯤의 동쪽 사면으로 신천과 닿아있는 경사도가 비교적 높은 기슭에 있고 이를 마주하여 신천을 건너면 좁게나마 선상지가 발달해 파동지역을 만들고 있다. 바위그늘 주거유적은 대부분 강가나 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파동 바위그늘도 마찬가지다.

국립대구박물관에서 2000년 12월 6일부터 12월 23일까지 발굴조사한 바에 의하면이 유적은 신천변에서 약 30m 떨어진 냇가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경사면에 위치해있고 이 바위그늘 뒤는 산성산 능선을 오르는 가파른 경사면이다. 이 그늘 바위의 바로 앞에는 이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5m정도 규모의 낙반암이 가로놓여있다.

이 바위그늘의 크기는 가로 8.5m,높이 3m 정도이며 화강암으로 돼있다. 형태를 보면 그 폭은 앞쪽이 좁고 뒤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평면사다리꼴의 바위덩어리다. 이 바위유적의 주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앞면은 비교적 평평하나 옆에서 보았을 때는 위쪽이 아래쪽 보다 약 2m 돌출해있고 30도 가량 기울어져있어 나무를 이용하면 충분히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지붕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청도 오진리 바위그늘 유적이 “ㄱ”자모양을 한 형태라면 이 곳 유적은 바위의 자연 경사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높이도 3-4m정도인 오진리의 유적보다 낮다. 출토된 유물은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편,갈돌,끌개,박편, 등과 삼국시대 토기편, 고려,조선 시대의 자기편 등 16점이 발굴되었다.

♦대구 두산동498-2유적

수성구 두산동 498-2지역에 남아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유적이다. 수성못 북편에 있는 두산로 확장공사 당시 발굴된 유적인데 이 유적의 북쪽은 두산로와 접해있고 남쪽은 수성못 뚝에서 이어지는 곳이다. 이 유적의 북편 도로 건너편에는 많은 상가건물이 밀집해 있고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1km 떨어진 지점에 신천이 흐르고 있다. 신천과 유적 사이에는 수목원 유기장, 모래야적장 등이 있으나 과거에는 신천의 선상지로 논밭으로 이용되었고 이곳에서는 이미 여러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 유적이 발굴된바 있어 이 일대가 청동기시에는 주거지로서 이어진 생활공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은 2003년 9월 22일부터 12월 15일까지 l 지역의 발굴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 수혈유구 3기, 구상유구 1기, 주혈 및 고려시대 도로유구 등 6기의 생활유구가 발굴되었다.

♦대구 사월동 296유적

수성구 사월동 296 외 13필지 지역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주거유적이다. 사월마을 북쪽의 조그만 구릉에 위치한 사월교회 부지내에 있다. 이 곳은 신매천이 범람해서 만들어진 충적평야의 한가운데에 남아있는 구릉지이다. 신매천에서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져있고 대구-경산 25번 국도에서 북쪽으로 약 22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2003년 11월 19일부터 12월2일까지 발굴조사한 바에 의하면 바닥만 남아있는 건물지 2동과 우물이 조사되었다. 건물지와 주변에서 수습된 옹기편과 자기편으로 볼 때 조선후기에 축조된 건물로 보인다.

♦대구 사월동400유적

이 유적은 사월동 400지역에 남아있는 삼국시대 주거유적이다. 이 유적의 위치는 대구-경산 사의 고산국도에 있는 사월교에서 대구방향으로 300m쯤 진행한 도로의 남쪽에 조성된 사월아파트 부지내에 있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6월 9일부터 8월 4일까지 발굴조사한 바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1동과 삼국시대 구상유구 2기가 남아있었고 유물은 고배편, 개편, 대부완편, 완편, 옹편, 호편,파수, 토구, 토제품 등의 토제유물과 상부에서 수습된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편과 석기가 확인되었다.

♦대구 신매동164유구

신매동 164지역에 남아있는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걸쳐진 생활유구이다. 이 유적은 시지지역에 남아있는 생활유적의 동쪽외곽에 해당된다. 유적의 위치는 시지3차 태양하이츠 아파트 내에있고 이 유적이 발굴된 것은 아파트를 짓기위한 형질변경에 앞선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것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0년 9월 18일부터 10월 9일까지 발굴조사한 바로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1동과 조선시대 수혈 4기, 주혈 등 총 7기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청동기시대의 구순각목무문토기, 단도마연토기, 무문토기편과 조선시대의 호, 옹기, 자기 등82점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었다. 조선시대 유구는 수혈유구 4기 중 2기에서 아궁이 시설과 배연시설이 확인되어 주거용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은 호, 옹기 등의 토기류와 접시, 대접 등의 자기류가 나왔고 일부 기와편과 철기편이 출토되었다.

♦대구 신매동・시지지구 생활유적(1)

수성구 신매동 592일대에 남아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생활주거유적이다. 이 유적에는 건물지와 도로유구,우물지, 수혈유구, 공방지 등의 다양한 유구가 포함되어있을 뿐아니라 삼국시대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복합유적이란 점에서 특히 그 의미가 크다. 이 유적은 대구광역시 도시개발공사가 시행한 시지지구택지개발사업의 사전조사과정에서 확인된 것인데 당시 조사구역을 4개구역으로 나누어 실시했고,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이 1994년 11월 24일부터 1996년 5월 29일까지 시지지구 생활유적 중 신매동 587-6번지 및 602-1번지 일대 면적 13,528평에 대한 발굴, 시굴을 실시한 결과 드러난 것이다. 네 개 구역중 1-3구역은 발굴조사를 실시했고 4구역은 시굴조사만 이루어졌다.

1-4구역에서 확인된 것은 삼국시대의 수혈유구, 기둥구멍, 유물유구, 고상식건물지,조선시대의 수혈유구, 기둥구멍, 우물유구 등 다양했고, 유물로는 적색연질호, 적색연질옹, 토구, 토관편, 고배, 마형토우 등 매우 다채로웠으며, 3구역에서 대규모의 구가 확인 된 것은 특기할만하다.

♦대구 시지동 유적(2)

수성구 신매동 601일대에서 발굴된 삼국시대의 주거유적이다. 시지동 공동주택지구내에 있는 이 유적은 대구 신매동 시지자구 생활 유적(1)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위치하고 있다. 1992년 12월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을 시작하였으나 시공업체들의 고의적 유적파괴행위로 많은 물의와 마찰을 빚었다. 이 때문에 영남대박물관이 발굴을 거부하고 결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993년 12월 13일부터 1994년 10월 12일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했고 그결과 1지구에서는 수혈주거지 1기가 확인되었고 서남쪽 모서리 잔존지역에서 소수의 수혈과 주혈이 발견되었으나 파괴가 심각했다.

출토유물로는 희청색 경질 굽다리 접시,접시편과 뚜껑편, 기타 회청색 경질토기편 등과 적갈색 연질 토기편, 연회색 우각형 파수 등 삼국시대 토기편 다수가 있다. 2지구에서는 거의 전 지역이 파괴되어 유일하게 굴립주의 구멍으로 추정되는 3-4개의 구멍이 정형성을 띠고 발견된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유구가 없었다. 현 상태로 본다면 이 구멍은 남북 2칸, 동서 3칸이상 되는 지상 가옥의 기둥구멍으로 추정될 뿐이다. 유물은 1지구와 마찬가지로 회색계통의 경질토기편 다수와 적갈색 연질토기편, 백황색 연질 우각형 파수 등의 삼국시대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3지구에는 구상유구 1곳과 뻘층 1곳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대구 시지동 유적 (1)

이 유적은 수성구 시지동 댁지개발지구의 조사에서 드러난 것으로 신매동602번지 일대에서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발굴한 결과 확인된 삼국시대의 주거유적이다. 당초 이 유적은 택지개발을 위해 1992년 4월부터 1993년 9월까지 영남대학교박물관이 지표조사 및 시굴조사를 실시했으나 발굴현장에서 아파트 시공업자들에의한 유적파괴행위가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바람에 사업이 중단되었다. 이에대한 긴급 수습조사를 목적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단이 투입되어 1994년 7월부터 1995년 1월까지 다시 발굴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수혈유구 5기, 노지 3기, 우물지 4기, 소토퇴적구간 10개소, 도로유구 2기, 구 4기, 기타 석열유구 등을 확인했다.. 유물은 우물지에서 출토된 것을 제외하면 모두 파편 상태로 드러났다. 토기가 대부분이었고, 나머지는 철기와 석기, 토제품 등이었다. 토기는 굽다리긴목항아리편, 굽다리접시편, 경질제아가리편, 짧은 목항아리편, 손잡이 달린 바리편, 인화문 토기 등이 출토되었고 철기류는 철겸, 철촉, 철부, 도자, 꺽쇠, 소찰편 등이 출토되었다. 토제품은 유구 안팎에서 모두 28점이 출토되었는데 이 가운데 토우가 16점으로 가장 많고, 방추차 4점, 토령 5점, 원판형토제품 2점, 마형토우 2점 등이다.

♦대구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2)

시지동 유적(1)과 같은 번지의 삼국시대 주거유적으로 유적(1)의 발굴 조사 당시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5년의 시지택지개발사업지구 1차발구조사지역 중 3지구에 해당하는 것과 2차 고분군발굴조사지역 중 생활유구부분에 대한 것을 묶은 것이다. 1994년 11월 24일부터 1996년 5월29일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이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삼국시대수혈유구, 우물유구, 대규모의 구, 소규모 웅덩이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 고배, 개, 송풍관편, 토구 등과 같은 연질 도질 토기편들이 출토되었다.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3)

이 유적은 수성구 신매동 602-1일대의 삼국시대 주거유적이다. 이 유적은 현재 시지고등학교부지에 위치해 있는데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7년 7월 1일부터 1998년 4월 15일까지 발굴조사했다. 그 결과 수혈유구, 구, 우물, 기둥구멍 등의 유구가 나왔고,이들 중 수혈유구의 일부는 남방식인 것으로 확인되었고, 주거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또 한 양호한 상태의 도로유구가 발견되어 도로축조방법에대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출토유물로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에서 나온 홍도를 비롯,삼국시대 토기와 철기가 대부분이며, 이밖에도 토관, 어망추, 숫돌, 기와류 등이 확인되었다.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4)

역시 신매동602-1 일대에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약 7년간 발굴조사한 결과 확인된 삼국시대의 주거유적을 중심으로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유적지다. 이 유적에서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와 주거지,삼국시대의 생활유구와 고분,조선시대의 수혈유구와 우물 등이 발굴되었다. 이중 삼국시대의 유적이 가장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있어 중심되는 유적으로 간주된다.

시대별 성격별로 유물을 살펴보면, 삼국시대의 생활유구로는 수혈유구,고상식 건물지,우물, 도로, 소형연못, 구 등이 드러났고, 주변에는 생활유적과 성곽유적이 확인되었다. 수혈유구는 약 300기 조사됐는데 평면형태는 부정형의 형태가 대부분이고, 일부는 정형성을 가진 것이었다. 정형성을 갖춘 평면형태는 방형이거나 원형인 경우가 많았는데 면적은 6-12m2정도이다. 이러한 유구의 내부에는 규칙적인 기둥구멍의 배치,부뚜막의 설치,바닥면의 정지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주거용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볼 수 있고,이밖에 부정형 유구는 주거용이외의 용도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상식 건물지는 18기 이러 정도 확인되었는데 평면형태는 대부분 방형이고 정면 2-3칸, 측면 2칸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건물지는 여러 동씩 한군데에 모여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용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주거용, 창고형, 초소용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물유구는 시지취락유적에서 확인되는 유구 중에서 가장 확실한 형태로 남아있으며, 그 용도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유구다. 이 우물 유적은 약 30기가 확인되고 있으며 모두 돌로만든 석조유구로 돼있다. 우물의 단면형태는 원형이거나 타원형이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크기는 지름이 70-90cm, 깊이는 2-3m가 대부분이다.

소형연못지는 이 지역에서 3기가 확인되었는데 구조적으로나 규모면에서 공통적 특징은 없다. 이 연못의 기능이나 용도는 농경지의 관개를 위한 관개지거나, 군사적 필요에 따라 만든 군용지, 궁원이나 사원, 또는 저택의 관상지, 일반생활용수나 작업공정에 필요한 용수공급지 등으로 추정해볼 수 잇는데, 여기서는 네 번째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도로유구는 모두 7개소에서 확인되었는데 만든 공정은 생토면을 약간 깍아 정지를 한 다음 그위에 냇돌이나 자갈돌을 깔아서 만들었으며, 표면에는 마차의 바퀴자국과 유사한 것들이 흔적으로 남아잇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도로시설을 통하여 고대의 운반수단과 도로축조방식, 주변의 다른 유적과의 관계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그 가치가 크다.

♦대구 욱수동 82유적

성암산과 안산 사이의 골짜기 입구의 망월지 동쪽에 이접한 욱수동 82일대 덕원중고등학교 부지내에 있는 삼국시대의 주거유적이다. 이 골짜기 아래는 비교적 넓은 선상지가 발달해있는데 이 유구는 선상지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 주거환경에 적합하다. 2001년 5월14일부터 2001년 6월 22일까지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이 지역에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가 출토된 주거지와 삼국시대의 구 3기, 수혈유구 16기, 주거지 1기, 고상식 건물지 1동, 이를 포함한 주혈 120기 등이 조사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총 160점으로 고배, 개, 마형토기, 호류 등 토기류가 대부분이고, 방추차, 어망추 등 토제품이 출토되었으며 철기류는 이형철기가 1점 출토되었다.

♦대구 욱수동 100-1유적

성암산에서 발원하는 욱수천이 만든 선상지의 선단부에 해당하는 수성구 욱수동100-1일대의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2002년 1월 9일부터 2002년 1월 18일까지 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삼국시대 수혈유구 16기와 주혈 33기가 확인되었다.

♦대구 욱수동 107-1유적

이 유적은 대구-부산간고속도로 구간 중 덕원고등학교 진입로 위를 지나는 망월육교구간인 욱수동 107-1일대의 삼국시대 주거유적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3월 17일부터 4월 25일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삼국시대의 수혈유구 7기, 우물 1기, 주혈군 5개소, 야외노지 1기 및 퇴적층 2개소, 그리고 시대미상의 배수로 1기 등 17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삼국시대유구에서는 연질옹, 연질호, 고배, 대부완, 완, 파수 등 토기류 45점과 용도불명의 철괴 1점이 출토되었다. 우물에서는 개, 완, 옹펀,호편 등 토기류 7점과 기와편 1점, 용도불명의 자루형모기 1점 등이 나왓고, 주혈군에서는 고배편, 연질토기편 등 토기편 7점, 퇴적층에서는 개, 고배편, 시루, 대부장경호, 연질완 등 토기류 42점과 석구 1점, 용도불명의 철기 2점이 출토되었다. 전체적으로 토도류 103점, 점, 철기류 3점, 목기류 1점 등 모두 108점이 출토되었다.

♦대구 욱수동 115유적

이 유적은 덕원중고등학교에서 시지고등학교에 이르는 남북직선로 구간인 욱수동 115번지 일대의 삼국시대 주거유적이다. 성암산 게곡에서 흘러내린 유수에 의해 만들어진 선상지의 중앙에 있는 유적으로 동쪽으로는 욱수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서쪽으로는 남북으로 얕은 구릉이 형성돼있는데 인근 주민들과 학생들이 등산로나 등하교길로 이용하고 있고 주변에는 포도밭 등 과수원으로 경작되고 있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2002년 3월13일부터 4월 30일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4주식 또는 9주식 고상식건물지 6동, 부정형의 수혈유구 22기, 길이 약 18m정도의 구 1기, 부정형의 주지 3동, 우물 1기, 190여기의 주혈 등이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은 고배, 개, 장경호, 연질발, 컵형토기,완, 파배 등의 토기류가 거의 대부분이나 방추차,구 등의 토제품과 철기도 몇점 출토되어 모두 98점이 수습되었다.

♦대구 욱수동117유구

남쪽에 덕원고등학교,북쪽에는 월드컵 경기장과 경산을 잇는 도로가 보이는 욱수동 117번지 일대에 남아있던 삼국시대 생활유적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2월 16일부터 2월22일까지 발굴조사한 바로는 삼국시대 구상유구 1기와 석열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연질파수부호 등 토제유물이 출토되었다.

♦대구 욱수동 118-1유적

시지아파트단지와 접해있는 우수동 118-1,118-9일대에 위치한 삼국시대 주거유적이다. 당초 이 유적은 인접한 지역에서 이미 유적들이 발구되었음에도 볼링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사전조사 없이 터파기 공사를 추진함으로써 유적의 일부가 훼손되는 일이 벌어져 공사를 중단하고 발굴작업을 하게된 것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은 이같은 사태가 발생하자 이곳이 시지지구 새활유적지와 연계되는 문화층이 존재할 가능성을 들어 공사중단을 요청했고 이후 1995년 5월 26일부터 6월 20일까지 정식 발굴을 한 결과 시지지구와 유사한 유적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곳에서 부정형수혈유구, 주혈, 우물, 토기혈, 근대적석유구, 근대배수로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대구 욱수동 119,120유적

이 유적은 욱수동 118-1유적과 서쪽으로 인접해 있는 삼국시대 생활유적이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2003년 8월11일부터 9월18일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수혈 9기, 주혈 145개가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주혈의 대부분은 일정한 간격이나 규모를 유지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수혈도 대부분 형태가 일정하지 않는 부정형을 돼있다. 출토유물은 조사지역 전체에서 무문토기의 저편부나 삼국시대의 적갈색 혹은 회청색 토기가 채집되었으나 층위가 교란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유구내의 안정된 층위에서 출토된 유물은 방추차, 고배편 등 8점의 토제품과 토기편이다.

♦대구 욱수동 123유적

이 유적은 대구-경산 국도의 대구-경산 경계지점 부근인 욱수동 123번지 일대에 남아있는 삼국시대의 생활유적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3년 7월 21일부터 8월 14일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삼국시대의 구상유구 1기와 다수의 주혈이 확인되었고 유물은 고배, 개, 완, 단경호, 옹 등의 토기류와 방추차, 토구 등 토제품,도자,가위 등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대구 욱수동 128유적

이 유적은 삼덕동-시지아파트단지 간의 도로 구간인 욱수동 128번지 일대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의 주거유적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9년 4월 1일부터 7월 11일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초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그 가운데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3기가 드러났고 이중 한 주거지 내부에서 공여토기편 등이 출토되고 있어 이곳이 무문토기시대 전기부터 유적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곳에는 삼국시대 초기의 옹관묘가 시지지구에서는 처음 출토되어 다호리 46호묘와 비슷한 시기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의 수혈유구는 주거용이나 작업용시설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대구 욱수동 130-3유적

이 유적은 시지지구 생활유적의 남쪽 경계지점인 욱수동 130-3지역에서 발굴된 삼국시대의 생활유적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의 발굴결과 삼국시대 수혈유구 2기와 우물 2기, 주혈군 2동이 조사되었으며 유물은 토기류 토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대구 욱수동 133-3유적

이 유적은 대구-경산 간 월드컵로 구간의 덕원고입구 네거리 부근 도로 남쪽 욱수동 133-3 지역일대에 남아있는 삼국시대의 생활유적이다.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6월 16일부터 7월 2일까지 발굴조사한 바에 의하면 삼국시대의 수혈유구 2기, 추정노지 2기 등 모두 4기의 생활유구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삼국시대 수혈유구에서만 출토되었고 주로 개편, 고배편, 장경호편, 파수부토기편, 연질저부편등이 나왔다. 또 지표에서는 고배편, 연질의 구연부편, 파수부토기편, 저부편, 토구 등이 수습도었다.

♦대구 욱수동 227-3유적

이 유적은 욱수천이 만든 선상지의 중앙에 해당하는 욱수동 227-3일대에 남아있던 삼국시대의 생활유적이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2002년12월 9일부터 2002년 12월 28일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삼국시대의 수혈유구 5기, 구 1기 등 총 6기의 유구와 논을 확인하였다.유구내부에서는 주로 소량의 연질 도질토기편이 출토되었고 수혈유구의 구체적 성격은 분명치않다.

♦대구 욱수동 232-1유적

이 유적은 욱수성당과 인근 소공원 사이의 욱수동 232-1,223일대에 위치하고있는 삼국시대의 생활유적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5월 17일부터 2004년 5월 22일까지 이 지역에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삼국시대의 토기편이 다량 포함된 퇴적층 1개소가 확인되었다.

♦대구 욱수동 287유적

이 유적은 과거 욱수들과 광월들에 건립된 시지아파트단지내의 욱수동 287지역에 위치하는 삼국시대의 생활유적이다. 영남대학j교 박물관이 1992년 3월 15일부터 1995년 3월 15일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삼국시대의 도로, 집터, 건물지,소토 등이 섞여있는 크고 작은 수혈유구와 주혈,우물, 연못 등 주로 생활과 관련된 유적들이 확인되었다. 유물로는 수혈유구에서 많은 양의 토기조각들이 나왔는데 이곳에서는 고분에서 주로 나오는 토기들과는 달리 적색연질토기들이 많았다. 또 고려 조선시대의 기와와 자기들도 많이 나왔으나 철기는 아주 적은 양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는 바람에 모두 없어졌다.

♦대구 욱수동 390-2유적

이 유적은 시지아파트 단지의 남쪽경계 바깥인 욱수동 390-2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나 시지지구 고분군, 생활유적, 욱수동388번지의 유적, 욱수동391-2번지유적, 노변동 유적 등과 연결되고 영남대박물관이 조사한 욱수동 고분군, 생활유적, 욱수동 367-1번지 유적,덕원중고등학교 부지 유적 등과 인접하고 있다.

발굴조사결과 삼국시대의 수혈유구 3기와 고상식 건물지 4기, 주혈군 1기 등 모두 8기가 확인되었고, 유물은 토기류, 토제품,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유적의 주요발굴 성과로는 고상식 건물의 배열이 일정한 배치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즉 서쪽에 치우쳐 위치한 고상식 건물지군이 욱수동 388번지 유적의 동쪽 고상식 건물지군과 연결되어 20m정도의 유지하고 일정한 너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남쪽으로는 욱수동 391-2 번지 유적의 가운데서 확인된 30m정도 너비의 상식 건물지과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시지생활유적(4)의 서쪽에서 치우쳐서 확인된 고상식 건물지군과 연결되어 서쪽의 고분군과 일정 간격을 띄워 남-북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고상식 건물지는 각군 마다 비슷한 주축 방향을 가지고 있으며 건물지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지의 성격은 규모나 평면형태, 우치나 배치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창고시설, 주거시설 등으로 추정된다. 주거지는 그 주변에 일정한 독립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에 반해 밀집분포하면서 고분군과 이어지는 평지주변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있는 고상식 건물은 창고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거물지에 사용된 주혈의 수와 크기는 그 창고가 각기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구 욱수동 391-2생활유적

욱수동 391-2번지에 남아있는 삼국시대 주거유적으로 이 유적의 북쪽부분은 욱수동 388번지 유적과 욱수동 390-2번지유적 및 시지지구 고분군에 접해있고 호서쪽 부분은 대구 욱수동 367-1 번지 유적과 근접해있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4월 6일부터 2004년 5월 21일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유구는 삼국시대의 고상식 건물지 11동과 수혈유구 3기, 주혈군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삼국시대의 토제유물 총 31점이 나왔고 이밖에 수혈유구 내부에서 고배편, 개편, 완편, 호편등이 나왔고 고상식 건물지 주혈 내에서 개편,대각편, 호편, 등이 출토되었다. 상부수습 유물로는 삼국시대의 토기편인 고배편, 호편 등이 나왔다.

♦대구 욱수동 419유적

이 유적은 욱수골 초입인 욱수동 419번지, 망월지 남서부 대구경북 불교대학 복지관안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생활유적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11월 15일부터 11월 25일까지 시굴조사한 결과 조선시대의 구상유구 2기, 수혈유구 1기, 다수의 주혈이 확인되었다. 유물로는 자기편과 구편통보가 출토되었다.

♦대구 시지동 60-1유적

이 유적은 시지동 60-1번지에 있는 고산중학교의 신축과정에서 형질변경에 앞서 실시한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와 조선시대의 생활유적이다. 청동기시대의 수혈주거지 2동, 집석유구 6기, 구상유구 2기가 확인되었고, 통일신라시대 석실묘 1기, 조선시대의 수혈유구 24기, 구상유구 2기,추정 건물지 1개소, 적심석 등 모두 39기가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은 토기류 및 조선시대의 생활자기류, 기와 등 177점이 출토되었다.

♦대구 시지동 276-2유적

이 유적은 시지동 285번지 지석묘와 도으로 약 30m떨어진 시지동 276-2번지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다. 앞서의 지석묘에서 발견된 구와 계속 연결되는 또하나의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를 확인한 것이다.

♦대구 시지동 279-1유적

이 유적은 시지동 285번지 지석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시지동 279-1지점에서 확인된 U자형의 구이다. 이구는 앞서의 지석묘와 ㄷ자형으로 감싸고 도는 형태로 노출되었고 구안에서는 다수의 무문토기편이 출토되었다.

♦대구 이천동280-1유적

이 유적은 두리봉(215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려오는 구릉지 말단부와 계곡(아랫재인골)에 위치하는 이천동 280-1번지의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이다. 이 곳은 배내마을 과 내지(內池)로 들어가는 소로와 연결되어 있는데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2003년12월17일 2004년 1월 17일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2동과 고려,조선시대의 원형수혈유구 1기, 구상유구 3기, 기타 주혈 등이 확인되었다.

♦고모동 고모역 철도관사

이 유적은 수성구 고모동 384-1에 위치한 일제 당시 건축했던 철도역에 부설된 종사원들이 사용했던 주거건축이다. 건축연대는 1930년경으로 추정되며 현재 8동 관사규모 가운데 연립형 3동만 남아있다. 관사의 종류별로는 국장관사를 제외한 3등부터 8등까지 6종이엇으며, 이같은 명칭분류는 건축공사상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전체 등급의 관사가 있었던 역은 서울의 용산역과 평양역 뿐이었으며 역에는 필요한 등급의 관사가 순차적으로 건축되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관사는 목조 단층의 2호연립형으로 지붕은 석면 스레이트로 이었다. 외관은 콘크리트 줄기초 위에 목조심벽을 구성하고, 목재 비늘판과 시멘트 뿌림칠로 마감했다. 내부의 바닥은 다다미와 마루판을 깔았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장판과 비닐로 교체되었다. 벽은 회반죽, 천장은 우물 정자 살을 짜고 그 사이에 판재를 끼워넣었다.

♦대구 가천동137-1유적

이 유적은 가천동 마을의 분단부인 가천동 137-1번지에 위치한 청동기시대의 주거유적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2년 대구-부산간 고속도로 공사과정에서 이 구간에대한 사전조사발굴 결과 확인된 것으로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와 시대미상의 구상유구 1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무문토기편, 석기, 방추차, 등 총 8점이 출토되었다.

♦대구 가천동 381-4유적

이 유적은 가천동 마을의 남쪽 구릉의 북편 사면의 일부인 가천동 381-4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생활유적이다. 이 역시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2년 대구-부산간고속도로 공사과정에서 이 구간의 사전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것이다. 그 결과 시대미상의 자연구 1기가 조사되었고 유물은 개, 호편, 파수, 옹편, 와편, 대접, 방추차, 어망추 등 22점이 출토되었다.

♦대구 매호동979-4유적

이 유적은 수성구의 매호마을 일대인 매호동979-4번지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주거유적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1월 17일부터 2월26일까지 발굴조사한 바에 의하면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 자연구 1기, 삼국시대 수혈 2기, 고상식 건물지 6기, 주혈군, 근대우물 1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고배대각, 광구소호편, 파수부배, 소형연질옹, 발형기대배신편, 연질호, 시루편, 방추차 등의 토제유물이 총 73점 출토되었다.

♦대구 매호동812-3유적

이 유적은 신매역 네거리 남동편 모서리인 매호동 812-3번지에 위치한 청동기시대의 주거유적이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시지아파트 단지 건설에 앞서 실시한 문화재 조사에서 발굴된 일부이다. 여기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1동과 통일신라시대 우물 1기가 확인되었고, 유물은 단도마연토기, 무문토기편,개편, 호편, 바가지편 등이 출토되었다.

바, 유물산포지

♦대구 범어동 유물산포지(1)

이 지역은 범어네거리에서 동북편 400m거리에 있는 대구지방법원 동편 독립구릉 남서편인 수성구 범어동 산223-4일대의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이다. 여기서는 소량의 토기편과 자기편이 확인되었다.

♦대구 범어동 유물산포지(2)

이 유적지는 대구여고 남동편의 독립 구릉지 북서 사면일대인 범어동 376-3번지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유물 산포지이다. 유물로는 삼국시대 및 조선시대의 토기편과 자기편이 확인되었다.

♦대구 만촌동 유물산포지

이 유적은 아양교부터 남동쪽으로 금호강변을 따라 파크 호텔 북쪽 강변까지 이어지는 수성구 만촌동과 동구 효목동 일대의 삼국시대 유물이 흩어져있는 곳이다. 이 유물산포지는 공원정비사업으로 개발되어 공원화한곳으로 금호강변 제방을 따라 형성된 범람원과 야트막한 능선이 이어지는 지형이다. 조사결과 삼국시대 토기편 및 조선시대 사기편이 확인되었다.

♦대구 파동 유물산포지

수성구 범물동에서 달서구 상인동까지 대구 4차도로 신설구간내에 해당하는 수성구 파동 278-1일대인 용두골, 대구수목원, 파동묘포장,신천대로와 신천, 파동 주택가, 법이산의 서편사면등지에 산포된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5년 6월29일부터 7월26일까지 지표조사를 한 결과 법이산 절토지 부분에서 조선시대 자기편과 기와편이 확인되었다.

♦대구 두산동 유물산포지

수성못 동편 야산일대인 두산동 270번지일대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이다. 현재 이곳은 은행나무가 밀식되어있고 골프연습장으로 개발되었는데 여기서는 소량의 토기편과 자기편이 수습되었다.

♦대구 지산동 유물산포지

이 유적지는 대구 4차순환도로 신설구간내의 범물터널이 끝나는 부분부터 범물로가 시작되는 지점까지 해당되는 수성구 지산동 산125-1번지 일대의 조선시대 유물산포지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5년 6월 29일부터 7월26일까지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선시대 자기편이 확인되었다.

♦대구 고모동 유물산포지(1)

이 유적은 경부고속철도 도심통과노선의 직접범위에 포함되는 팔현마을 동쪽 고모들과 애기들이 펼쳐진 고모동 산 14일대에 흩어져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이다. 이 일대의 경작지 지표에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걸진 구연부편, 대각편, 타날문호편 등이 수습된 점을 미루어 보아 주변의 고분군과 관련된 생활유적의 분포가능성을 보여준다.

♦대구 고모동 유물산포지(2)

고모마을 남쪽 구릉지인 고모동 360번지 일대에 분포한 삼국시대 유물산포지이다. 이 구릉지는 경작지로 이용되어 왔는데 여기서 많은 무문토기, 와질토기 등 삼국시대의 토기편이 채집되었다. 이 유전지는 입지로 보아 이른 시기에는 가까운 금호강을 주생활원으로 한 주거유적이 자리잡고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삼국시대에는 묘지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구 가천동 유물산포지(1)

이 유적은 가천마을의 북쪽에 있는 나지막한 능선 사면부인 가천동 80-5번지 일대에 분포된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이다. 여기서 서쪽으로 약 700m떨어진 떨어진 금호강가에는 고모동 유물산포지가 위치하고 있고 남쪽으로 약 100m쯤 떨어진 곳에는 가천동 유물산포지(2)가 위치한다. 구릉지 전체에 걸쳐 삼국시대의 토기들이 흩어져있다.

♦대구 가천동 유물산포지(2)

이 유적은 가천동 유물산포지(1)과 같이 시지동, 매호동, 고모동에 걸쳐서 금호강을 따라 형성된 구릉지의 남쪽과 서쪽사면에 해당하는 가천동 645-3번지 일대에 흩어져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이다. 유적이 잇는 사면은 해발 55-70m이고 이곳에서 삼국시대의 토기가 수습되었다.

♦대구 가천동 유물산포지(3)

대구-부산간 고속도로에 의해 구릉의 서편말단부가 잘려진 가천동 산 11-1일대의 삼국시대 유물산포지이다. 유물은 이 구릉지 북편 경작지에서 토기편이 다수 확인되었고, 구릉의 서편에서 삼국시대 유구가 확이되고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에는 아직도 고분군이 일을 가능성이 크다.

♦대구 가천동 유물산포지(4)

이 유적은 경부고속철도 지상화노선의 대구 시점에서 부산방향으로 약 24.8km지점인 가천동 1803-3번지 일대의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이다. 해발 76.1m의 그릉과 접하는 지점을 시작으로 동쪽의 고모화물기지와 금호강뚝 사이에 위치하는 이 유적지에는 철도공사에 의해 약 50cm깊이로 파인 도랑의 절개면에서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편, 단도마연토기편과 삼국시대의 고배편, 각종연질토기류 등이 발견되었다. 지표채집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및 삼국시대의 생활유적이 분포할 가능성이 크다.

사, 고분

♦대구 만촌동 청동기 유적

이 유적은 금호강의 아양교 상류쪽으로 500m 떨어진 동촌유원지 내의 수성구 만촌동 산 5번지 일대의 초기철기시대의 선사고분으로 여기에서 선사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구릉과 구릉 사이의 넓은 침식곡의 완만한 경사면에 위치한 이 분묘는 1966년 유원지 이용객이 급증하자 대구시가 이곳에 진입로와 주차장확장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주차장 서쪽의 경사면에있던 이 분묘를 발굴, 유물들을 발견하게되었다.

출토유물은 세형동검 3점, 중광형동과 1점, 검파두부장식구, 칼코부속구 등인데 매장상태는 아래에 세형동검 3점을 쌓고 그위에 동과를 포개어놓았다.

♦대구 만촌동 고분군

이 유적은 금호강과 남쪽으로 접하면서 북으로 뻗은 해발 95.9m의 낮은 능선인 수성구 만촌동 산 161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유적의 남쪽은 경부선 철로가 복선화되는 과정에서 터널공사 과정의 굴착등으로 능선의 절반이상이 절개된 상태다. 이근 농경지의 관개목적의 팔현지를 기준으로 서편의 완만한 사면과 당딩이골에서 삼국시대의 대호편, 부가구연호편, 고배개편, 평행타날문옹편, 연질옹편, 토일신라시대의 인화문개편 등이 수습되었고, 채집유물군과 지형적 여건으로 보아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기까지의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구 중동 지석묘

이 지석묘는 광명 프레지덴트 아파트와 남쪽으로 40m 떨어진 골모어귀인 중동 400-1번지에 위치하는 청동기시대의 선사분묘이다.1983년조사에서는 남북으로 2기가 있었으나 1990 초에는 1기만 남아있었다. 1995년에는 건재상이 들어서면서 상석을 없애버린 것이다. 1983년 조사에 의하면 재질은 화산암이며, 크기는 각각 길이 153x217cm, 너비 120x 30cm, 높이 35x52cm이다.

♦대구 수성구 상동 지석묘(1)

신천을 따라 남북으로 흩어져있는 지석묘 가운데 남아있는 청동기시대 선사분묘 4기이다. 수성들과 법이산이 접하는 지역으로 수성못 서쪽제방에 인접한 상동 50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조사결과 지석묘 상석 4기외에 지석묘의 하부구조 48기와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유구 3기 등 모두 41기의 석곽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석검 2점과 석촉 51점, 토제어망추 1점 등이 출토되었다.

지석묘 상석은 유적의 이전복원이나 현장복원,공원조성 등에 대비해 현재 수성유원지 서편주차장의 서쪽 모퉁이에 모아둔 상태다. 지석묘 상석 4기의 규모는 길이 205-284cm, 폭 101-150cm, 높이 30-170cm이다.

♦대구 상동 지석묘(2)

이 유적은 상동지석묘(1)에서 북쪽으로 약 1km 떨어진 수성들 가운데인 상동 29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선사분묘이다. 여기서 지석묘 상석으로 보이는 암괴가 남아있었는데 조사결과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발굴조사후 상석 5기는 정화여고 앞 도로변 식물원에 옮겨놓았다가 다시 두류공원 지역에 있는 대구시 문화예술회관 안에 이전해 관리하고 있다. 상석의 크기는 길이 220-370cm, 너비 130-273cm, 높이 40-195cm이다.

♦대구 상동 지석묘(3)

이 유적은 상동 80번지 일대 현 정화 우방팔레스 아파트 부지에 위치했던 청동기시대의 선사분묘이다. 당초 구 정화여중고 동편 수성들에서 수습한 여러 기의 지석묘 상석이 이 학교로 옮겨져있었고, 그 무렵 이 학교의 가사실 남쪽에 방형의 길이 190cm, 폭 147cm, 높이 75cm규모의 화성암으로 된 지석묘 1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 지석묘는 1972년 경북대학교 박물관이 조사를 했을 때 학교 기사실의 증축공사 과정에서 파손된 상태로 있었다. 남아있던 지석묘 규모는 길이 150cm, 폭 50cm가량이며, 내부 바닥에서 2단병식석검이 출토되었다.

구후 2000-2001년의 두차레에 걸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의 발굴조사에서 상석을 구비한 지석묘 1기와 석관묘 2기, 석곽묘 31기를 조사하였다. 발굴조사후 현 정화우방팔레 아파트 서편 소공원에 형태가 잘 남아있는 지석묘 4기, 석관묘 3기, 주거지 2기를 이전 복원하였다.

♦대구 파동 고분군

이 유적은 법이산 서쪽 산기슭이 신천과 접하는 완만한 경사면에 해당하는 수성구 파동 산1-1번지 일대의 삼국시대 고분이다. 대부분의 봉분이 유실되었으나 주변에 10여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 고분 역시 주민들에의해 많이 훼손되었다.

고분의 규모는 길이가 3-5m내외, 높이는 30-90cm정도이며, 대형분은 길이가 10-15m내외, 높이 50-140cm정도로서 동쪽사면에 있는 대형분의 훼손이 특히 심하다.

♦대구 파동5-1유적

역시 법이산 서쪽 구릉의 말단부인 파동5-1번지 일대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이 고분은 1997년 6월말 달성군 가창면 용계동 47번지에 사는 김수분씨가 폭우로 무너진 밭뚝을 수리하던 중 사이부호(四耳附壺),개,등 7점의 토기를 발견하여 신고함에 따라 발굴조사하면서 드러난 고분이다. 이 조사를 맡은 국립대구박물관은 1997년 7월2일부터 7월6일까지 총2기의 분묘를 발굴조사한 결과 이 분묘는 완만한 경사면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경작지 개간과 소방도로 개설 등으로 대부분 파괴되었고 북단벽과 양장벽 일부만 남아있었다.

1호분 석곽은 자연석과 청석으로 축조하였으며, 현재 북단벽과 동장벽은 1단, 서장벽은 5단 정도 남아있다. 2호분은 1호분에서 북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장방형 수혈식 석곽이다. 석곽은 계단식으로 경작되고 있는 밭의 경계지점에 위치하고,서쪽은 계단식의 단이 만들어져있다. 완만한 경사면에 조성되었으나 상부의 훼손으로 개석으로 보이는 장대석 1매가 발견되었을 뿐 석곽상부에는 개석이 덮여있지않았다. 유물은 유개고배, 대부장경호, 사이부호 등이 출토되었다.

♦대구 파동지석묘

대구-청도간 도로에서 수성못 쪽으로 진입하는 도로 남쪽 파동 676번지 일대의 청동기시대 선사분묘이다. 1기의 선사분묘가 밭에 남아있었는데 1983년 “수성관”이란 건물이 들어서면서 분묘는 파괴되고 현재는 아무것도 남아있지않다. 1983년조사에서 길이 260cm, 넓이 195cm, 높이 205cm 크기로 장축은 남북 방향이다. 돌의 재질은 현무암계이며 지석으로 짐작되는 천석이 노출되어있다.

♦대구 두산동 고분군(1)

이 유적은 법이산에서 북쪽산록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지에 위치하고있는 해발 97m의 두산(斗山) 또는 동기산(洞基山)이라 불리는 ‘T'자형의 낮은 산인 두산동 산621일대에 남아있는 삼국시대의 고분군이다. 고분군은 이 산의 북쪽, 동쪽사면과 능선 정상부의 평탄면, 남쪽사면의 자락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고분들은 대부분 도굴되었고, 자연적 유실에 의해 봉분이 깍인채 석곽이 그대로 노출된 경우도 있었다. 현재 조사된 고분 수는 모두 72기이다. 그러나 지표상에 드러나지않은 고분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 두산동 고분군(2)

1997년 6월 수성구청이 인공폭포조성공사를 시행하던 중 “문화재지키기 시민모임”의 회원인 김계숙씨에 의해 고분유적이 파괴되는 현장이 목격되었다. 양도영 조사위원이 공사현장을 답사, 두산의 북쪽자락인 두산동612-1일대에 삼국시대의 고분인 석곽묘 여러 기가 파괴된 상태로 노출되어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긴급수습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국립대구박물관이 1997년 10월 13일부터 11월 13일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노출된 유구는 천석이나 판속을 사용한 3기의 수혈식 석곽묘, 용도를 알 수 없는 적석유구 3개소가 조사되었다. 폭포조성공사에 따른 발굴조사였던 만큼 발굴된 유구는 많지않았다. 유물은 석곽의 양쪽 단벽부분에서 주로 출토되었는데 토기류는 대부장경호, 원저단경호, 유개고배, 무개고배, 삼이부호, 방추차 등이다. 또한 장신구로는 금제이식 1쌍, 철기류로는 철도자, 철모, 철제교구, 꺽쇠 등이 출토되었다.

♦대구 두산동 청동기유적

현재는 지산동 1065-51번지이나 발견당시에는 두산동 1392번지여서 두산동 청동기 유적이라 부르는 초기철기시대의 선사분묘이다. 이곳은 지금은 주택지로 변했으나 원래는 수성못 동쪽의 낮은 구릉지대였다.

이 고분은 1975년 이 곳에 살았던 최명덕씨의 아들이 대문을 고치던 중 세형동검과, 동경, 철정을 발견하면서 확인된 것이다. 당시 발굴된 쇠는 발견자가 고물상에 넘겼다는 것인데 유적의 성격은 정확히 밝혀지지않았으나 동검과 철기가 함께 나오는 것으로 보아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구릉지 주변에는 지석묘와 고분이 분포하고 있어 이 일대가 선사시대부터 생활집단지역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청동검은 길이가 32.9cm,로 끝부분은 길고 가운데의 능은 몸체까지 내려와 있다. 절대와 마디사이는 완만하게 휘어져있고 양날은 평행하나 손상이 심하다. 거울은 청동검보다 늦은 시기의 것인데 청동검이 오랫동안 전해져 오다가 같이 묻힌 것으로 짐작된다. 거울의 지름은 7.2cm이고 뒷면에는 포도무늬와 동물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대구 사월동 지석묘(1)

이 유전은 사월동 북쪽 밭에 조성된 조선조 훈련원판관 김여원(金汝瑗)과 부인 해주오씨묘 주변인 사월동 272-3번지에 남아있는 6기의 청동기시대 선사분묘이다. 이 곳은 성암산이 금호강 쪽으로 뻗어내리는 낮은 구릉의 말단부에 해당한다. 현재 지석묘는 1-5호와 6호 사이에 삼육외국어학원이 들어서서 양분된 상태이다. 지석묘 상석은 재질이 현무암이며 형태는 방형, 장방형, 오각형 등 여러 가지이다. 상석의 크기는 길이 153-220cm, 너비 120-170cm, 높이 25-70cm정도이다.

♦대구 신매동 156-510유적

이 유적은 현 시지 아파트 부지내인 신매동 156-510번지에 위치하는 삼국시대의 고분으로 시지지구 생활유적과 복합된 대규모 유적이다. 이 유적은 영남대 박물관이 조사한 욱수동 고분군과 영남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한 노변동 고분군과 연접해있다. 1996년 7월 25일부터 1997년 5월 20일까지 시지지구 고분군에대한 조사결과 삼국시대 수혈식 석곽 195기, 횡구식 석실 13기, 횡혈식 석실 29기, 옹관묘 13기, 기타유구 25기 등 총 275기가 확이되었고, 대부장경호, 부가구연장경호, 고배 등의 토기류와 철겸, 철촉, 철탁, 유자이기 등의 철기류, 금동관편과 금동제이식 등의 장신구류 등 4,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구 욱수동 고분군(1)

이 유적지는 제일합섬의 서편 구릉지인 욱수동 산4, 5-3, 5-4, 48번지 일대에 위치한 삼국시대 고분이다. 이 고분군은 성암산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의 말단부로 해발 90m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고, 이 고분군의 동남쪽은 건천지와 접해있으며,서쪽은 욱수천이 흐르고 있다. 이 구릉에는 약 20기의 고분이 남아있으나 도굴과 경작으로 거의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있다.

고분은 세장방형으르 수혈식 석곽묘인데 규모는 길이 2m, 폭 80cm, 높이 70cm 정도이다. 석곽은 천석과 할석을 이용하여 5-6단 정도 쌓아올렸으며 계석은 화강암게의 판석을 사용했다. 구릉의 서편은 경작지로 고분의 형태는 양호한 편이었으나 공장을 짓기위해 터고르기를 하면서 이 또한 완전히 파괴되었다. 유적과 남서편으로 접하고 있는 지역은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8-2001년에 걸쳐 발굴 조사한 대구 욱수동, 경산 오산동 유적이 위치한다.

♦대구 욱수동 고분군(2)

이 유적은 욱수동 고분군(1)의 능선 정상에서 동사면과 남쪽 아래 평지인 욱수동 367-1,393번지 일대의 삼국시대 고분이다. 이 고분은 시지댁지개발사업 당시인 1992-1995년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문화유적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것인데 이 때 570여기의 분묘가 발굴되었다. 또 1994-1995년에는 영남문화재연구원이 능선의 동사면 아래쪽 대부분을 조사해 900여기의 분묘를 확인했다.

♦대구 욱수동 134유적

이 유적은 시지지구 생활유적의 분포범위에 포함되면서 이 생활유적의 남쪽 경계 바깥인 욱수동 134번지 일대에 위치한 청동기시대의 선사고분이다. 발굴조사결과 청동기시대 석관묘 4기, 삼국시대 수혈유구 4기, 조선시대 수혈유구 1기, 시대미상의 우물 3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편, 마제석검, 삼국시대의 고배편, 대호편, 파수, 토구, 방추차, 토제품,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대구 욱수동 364-3유적

이 유적은 월드 컵로의 사직단 삼거리 부근의 도로 남쪽에 근접한 욱수동 364-3일대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9월 20일부터 12월 30일까지 발굴 조사한 결과 삼국시대 석곽묘 1기와 석실묘 3기, 노지 1기가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토제 유물 73점, 금속유물 30점등 총 103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구 욱수동 388유적

이 유적은 시지택지지구의 남쪽 경계 바깥인 욱수동 386, 388번지 일대에 위치한 삼국시대 고분이다. 이 고분은 시지지구 고분군과 생활유적, 욱수동 391-2번지유적,욱수동 390-2번지 유적, 노변동 유적, 영남대 박물관이 조사한 욱수동 고분군과 생활유적, 욱수동 367-1번지 유적과 모두 연접해 위치하고 있어 발굴조사만 사정에 따라 따로 따로 이루어졌을 뿐 사실상 동일 유적지이다.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수혈유구 3기와 고상식 건물지, 주혈군 등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의 발굴조사에서 유적내 유구의 성격및 취락내 배치에 따른 공간분할이 이루어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성과를 올렸다. 즉 유적의 중앙부를 동서방향으로 나누어보면 동쪽부분은 고상식 건물이 일정한 방향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2열로 배치되어 있고, 그 고상식 건물 사이의 공간에 수혈유구가 조성되어있었다. 또 반대편인 서쪽의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지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완만히 올라가다가 노변동 유적이 위치한 구릉으로 이어졌다. 이 일대는 삼국시대 고분군이 밀집되어 있는 노변동 고분군으로 이들 고분군이 시작되는 경계를 찾게한 계기가 되었다. 고분군이 시작되는 지점과 고상식 건물이 끝나는 지점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공지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고상식 건물군이 위치한 생활 영역과 고분이 시작되는 사자의 영역과의 구별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 시지동 석관묘

이 석관묘는 시지동 산 4번지 일대인 선명학교가 위치하는 동서로 돌출된 야산 바로 아래서 발견된 청동기시대의 선사분묘이다. 이 유적은 1983년 선명학교 학생이 야산을 개간하다가 마제석검을 수습하여 대구시에 신고하면서 알려진 유적이다.

석관묘는 산의 서쪽 끝 지점에 동서방향으로 청석암반을 파고 평평한 판석을 세워 만든 것인데 크기는 길이 170cm, 너비 50cm, 깊이 35cm였고 바닥의 판석위에 마제석검이 놓여있었다. 크기는 길이 28.5cm, 너비 4cm이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대구 시지동 고분군

이 고분은 대구-경산간 도로변에 있는 고산초등학교 뒷산 시지동 17번지 일대인 해발 80m 정도의 야산에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시대의 유적이다. 경사면 아래에 분포하고 있는데 10여기가 확인되고 있으나 현재는 주변 주민들의 등산, 경작 등으로 유구의 파괴 정도가 매우 심한 편이다.

고분은 개석을 갖춘 소형석곽묘들로 냇돌과 할석으로 만들었다. 부근 곳곳에 삼국시대의 토기조각들이 흩어져있다.

♦대구 시지동 지석묘(1)

시지동 285번지 일대에 분포하는 청동기시대의 선사분묘이다. 발굴조사 결과 석관묘 13기와 석곽묘 2기가 확인되었다.

♦대구 시지동 지석묘(2)

시지동 지석묘(1)의 서쪽 200m지점인 시지동 285번지일대에 위치한 청동기시대의 선사분묘이다. 발굴조사 결과 석곽 2기와 석관 1기가 확인되었다.

♦대구 대흥동 고분군

내환동 서지장로교회 서쪽인 수성구 대흥동 산 203호, 산 26-2,산 46, 504번지 일대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경작을 위해 절개한 단애면에서 수혈식 석 곽묘의 벽석구조로 추정되는 할석들이 일부 노출되어있고, 내부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편 1점이 출토되었다.

♦대구 대흥동 분묘군

이 분묘군은 월드 컵 종합경기장 내에 고려-조선시대의 분묘 200여기가 집중 분포하고 있는 유적이다. 월드 컵 축구 경기를 위해 경기장을 건설할 당시 사전조사를 위해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7년 11월 25일부터 1998년 2월 27일까지 발굴한 결과 고려-조선시대의 분묘 212기와 골호 4기, 용도미상의 수혈유구 2기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자기류, 질그릇, 청동수저와 청동합, 관정을 비롯한 철기류, 옥류 등 500여점이 수습되었다. 시굴조사 당시에는 무문토기, 석기 등이 수습되었는데 이에 따른 유구는 확인되지않았다.

♦대구 삼덕동 고분군

수성구 삼덕동 196-2, 산 200번지 일대의 야산에서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이 월드컵 경기장 부지내의 지표조사에서 확인한 삼국시대의 고분군이다. 유구내에는 토기편들이 수습된 바 있으나 주변 일대의 야산 지역에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만 할 뿐 잡목 등이 욱어져 더 이상의 확인이 어렵다.

♦대구 연호동 고분군

수성구 연호동 산 8번지 일대에 분포하고있는 조선시대의 고분군이다. 이들 분묘는 대구시 종합건설본부가 삼덕동-시지택지간 도로건설공사 구간에대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것인데 조선시대 토광목관묘 29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이 분묘에서 분청사기와 청동제품, 관정 등 108점이 수습되었다.

♦대구 연호동 가선대부 양공지묘(嘉善大夫 梁公之墓)

방무산 남쪽 사면인 수성구 이천동 산 34-1번지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가선대부 양정운의 묘소이다. 이 분묘에는 묘비가 세워져있으나 비문은 마멸이 심하여 알아보기 어렵다. 다만 공이 남원출생임을 알 수 있을 뿐이며 비신은 높이 92cm, 가로 42cm, 두께 14cm이다.

♦대구 고모동 고분군(1)

이 유적은 경부고속철도 지상화 노선의 시점에서 부산 방향으로 22.5km 떨어진 팔현마을 북쪽 해발 103.7m 야산의 남쪽사면 일대인 수성구 고모동 산 11번지에 분포하는 삼국시대의 고분군이다. 유물은 주로 팔현마을 북편 사면의 완만한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었는데 삼국시대의 고배구연 및 대각편, 개부의 꼭지편, 삼각집선문 및 파상문호편 등이 폭넓게 흩어져 있었다. 현재까지 지표상에는 특별한 유구의 흔적은 확인되지않았지만 채집유물과 구릉지인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에는 삼국시대의 고분군이 분포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 고모동 고분군(2)

이 유적은 경부고속철도 지상화노선의 시점에서 부산방향으로 22.7km 떨어진 지점인 해발 80.3m의 야산 동쪽 사면과 흰등골에 걸쳐있는 고모동 산 57번지 일대의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이 일대는 외가리가 집단 서식하는 조수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인데 지표관측이 불가능할 만큼 잡목과 잡초, 칡능쿨 등이 욱어져있다. 유물은 소로와 접한 능선의 말단부에 조성된 민묘 주변에서 삼국시대의 고배구연부편, 파상문호편, 대각편과 각종연질편이 발견되었으며, 채집유물의 성격과 지형이 구릉지임을 감안하면 삼국시대의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 고모동 고분군(3)

이 유적은 고모마을 북쪽의 해발 58m의 독립구릉과 구릉에서 이어지는 안골들 지역인 고모동 394번지 일대의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이 일대의 지형은 경부선 고모역 공사로 인해 양분된 상태이며 조사결과 구릉의 정상부와 서쪽 사면에 지름 1m안팎의 도굴한 구멍이 확인되었다. 유적내에서는 삼국시대 대각편, 고배구연편, 평행타날문옹편, 호편 등을 비롯 통일신라시대의 대호편과 와편등이 수습되었다. 수습된 유물과 구릉지의 지형조건으로 보아 삼국시대에서부터 고려시대까지 걸친 고분군과 생활유적이 분포하고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구릉의 정상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이팝나무가 위치해있다.

♦대구 가천동 160-1유적

이 유적은 대구-부산간 고속도로 구간에 속하는 가천동 마을 북쪽 능선 말단부에 위치한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2년 발굴조사한 결과 삼국시대 석곽묘 27기, 고려시대 건물지 3동이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고배, 유개고배, 호편, 철도자, 철겸, 철촉, 대접, 청동불상, 자기편 등376점이 출토되었다.

♦대구 가천동 산11-1유적

이 유적은 가천동 마을의 남쪽 사면인 가천동 산 11-1번지 일대에 분포하고있는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2년 발굴조사한 결과 삼국시대의 목곽묘 24기, 석곽묘 4기, 조선시대 수혈유구 3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유개고배, 대부호, 단경호, 장경호, 광구소호, 유자이기, 철촉, 철겸, 곡옥 등 166점이 출토되었다.

♦대구 가천동 541-2유적

이 유적은 대구부산간 고속도로 구간에 속하는 가천동 541-2번지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2년 발굴조사한 결과 초기삼국시대 목곽묘 4기와 삼국시대 석곽묘 4기, 조선시대 분묘 43기, 주거지 3기, 보시설, 노시설,구상유구가 드러났다. 유물은 유개고배, 부가구연대부장경호, 양뉴부호, 옹편, 호편 등이 출토되었다.

♦대구 가천동 고분군(1)

고모역에서 남동쪽으로 약 300m떨어진 낮은 구릉지인 가천동 산 18번지 일대에 분포하는 삼국시대의고분이다. 이 구릉은 시지동의 북쪽에 솟은 해발 약130m의 야산 서북능선 으로 산(山)자 모양의 능선중 가장 남쪽 능선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1983년 조사 때에는 주변에 토기편과 함께 3-4기의 고분을 확인할 수있었다. 봉분은 깍여져 직경 3m, 높이 1m내외였고, 주변에 냇돌이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경작지로 개간되는 바람에 고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소량의 토기편만 수습되었다. 대구 문화유적 가운데 아무른 기록도 없이 사라진 경우의 하나다.

♦대구 가천동 고분군(2)

이 유적은 대구선 철도이설구간 가운데 동대구-청천구간에 해당하는 지역의 가천동 118,119,129,130번지 일대에 분포된 조선시대의 고분군이다. 고분군은 가천동 마을의 동쪽 능선 말단부와 북쪽 능선 일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으나 발굴조사는 가천동 마을 북쪽 능선 남사면과 서사면 일부지역에 국한해 실시했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8년 11월 16일부터 1999년 7월 31일까지 조사한 결과 수혈식 석곽묘 204기와 힁혈식 석실묘 7기가 확인되었고다. 유물로는 고배, 단경호, 대부장경호, 대호, 연질옹 등의 토기류와 유자이기, 철도자, 철검, 철촉, 등자 재갈 등의 철기류 및 금동제수하이식, 세환이식, 금동관 등의 장신구류 등 총 3500여점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피장자의 인골이 양호한 상태로 확인된 경우가 많았다.

♦대구 노변동 유적

이 유적은 수성구 삼덕동-시지택지지구간 도로 건설구간인 노변동 산 3번지 일대의 삼국시대 고분이다.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의 목곽묘, 석관묘, 옹관묘를 비롯 조선시대의 사직단과 토광묘 등 774기의 유구가 확이되었다. 유물은 고배, 장경호, 단경호, 철검, 대도, 철촉, 철탁, 금동관, 이식, 곡옥 등 11,000여점이 출토되었다.

♦대구 노변동 고분군(1)

이 유적은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의 동편의 남북으로 뻗은 지역인 노변동 71번지 일대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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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문화재와 자취 2,주요 유적・유물 suseong 2011-07-21 0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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