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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동(泛魚洞)
관리자 | 2006-06-28 17:07:39

범어동은 본래 대구부 수북면의 지역으로서 조선때 범어역(泛魚驛)이 있었으므로 범어 또는 역촌(驛村)이라고도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달성군 수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10월1일 대구구역이 확정됨에 따라 대구부에 편입되었다. 범어동을 한자로 泛魚 , 凡魚 , 凡於로 쓰여져 내려온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泛魚洞"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 유래를 보면 1500년 초 철원부사를 지낸 구수종이 정착하면서 일군마을이라고 하는데 마을 전체가 마치 한마리 물고기가 냇물에 올라 떠 있는 형상이므로 마을이름을 뜰범(泛) 고기어(魚)로 범어(泛魚)라고 했다고 전해온다.

1975년 10월 1일 범어동을 범어 1·2동으로 분동하고(시조례 제919호), 1979년 8월 23일 범어2동이 범어 2동·3동으로 분동되고(시조례 제1214호), 1982년 9월 1일 범어1동에서 범어4동이 분동되었다. (시조례 제1589호)

지금의 범어 1,2,3,4동은 수성구중에서 중심지역이 되고 있다. 수성구 하면 흔히 수성동이 중심마을인듯 하지만 사실은 범어동을 중심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범어1동에 범어역(泛漁驛)이 있었다고 하는데, 옛터를 찾을 수는 없으나 조선때 범어역은 성현도찰방(省現道擦訪)에 딸리어 경주(慶州), 압량(押梁)과 설화(舌火)에 연락되었다고 한다. 범어동은 범어역을 중심으로 오가는 행인과 많은 말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범어동의 자연부락

 

야시골

현재는 범어2동으로 범어시민공원이 들어서 있는데 범어시민공원 지정전 동편은 공동묘지로 6.25이전에는 인가가 거의 없었으며 남쪽 골짜기에는 야시(여우)가 많이 나타난다고하여 야시골로 불렀으며 6.25이후 피난민들의 판자집이 들어서면서도 계속 야시골로 불려지다가 현재 범어시민공원의 일부로 공동묘지가 옮겨지고 신흥주택지역으로 타지역 주민들의 이주로 야시골의 명칭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며 범어시민공원으로 불려지고 있다.

배밀

수로변경전 범어동2148번지 밑 언덕으로 범어천 물길이 흐를때 항상 조각배 두어척이 드나들며 배가 닿았덤 물가 언덕이라고 '배밀'이라고 칭했다.

다람뱅이

수로변경의 과거 범어천이 범어동 2148번지 언덕밑으로 물이 돌아서 흘러가는 마을이라고 돌암뱅이라고 칭하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상 다람뱅이로 명칭이 바뀜. 현재는 수성4가 신천변전소 북동쪽 언덕밑에 위치함.

수통골

범어 남쪽에 있던 마을로 수통샘이 있어 수통골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

밤자골

마을뒤에 밤나무산이 있었는데 높이가 116m나되었다고 하며 밤나무가 많은 마을이라고 밤자골, 밤자산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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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어동(泛魚洞)
  • 관리자 | 동명유래 | 2006-06-28 | 1291 hits
  • 범어동은 본래 대구부 수북면의 지역으로서 조선때 범어역(泛魚驛)이 있었으므로 범어 또는 역촌(驛村)이라고도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달성군 수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10월1일 대구구역이 확정됨에 따라 대구부에 편입되었다. 범어동을 한자로 泛魚 , 凡魚 , 凡於로 쓰여져 내려온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泛魚洞"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 유래를 보면 1500년 초 철원부사를 지낸 구수종이 정착하면서 일군마을이라고 하는데 마을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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