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OGIN | JOIN | SITEMAP
수성문화원 로그인 X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관리자 | 2006-05-10 16:51:15
Download #1 : img_0334.jpg (36 KB), Down:331
소재지 : 수성구 만촌동 산90

우리민족은 고래(古來)로 구릉과 산성을 방수(防守)의 요충으로 중시하여 각종 성(城)을 쌓았으나 평지에 성을 축조하는 것은 드물었다.

지방행정관서가 있는 곳의 평지에 축성된 대구 읍성(邑城)은 1590년(선조 23)에 처음 만들 때는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뒤 1736년(영조 12)에 돌로 다시 쌓아 석성(石城)을 만들었다.

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정문을 두었는데, 동문은 진동문(鎭東門), 서문은 달서문(達西門), 남문은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북문은 공북문(拱北門)이라 하였다.
1906년 읍성이 철거될 때 성문들도 함께 철거되었다.

현재의 영남 제일관은 1980년에 그 자리를 옮겨 새로 세웠으나 성루(城樓)의 위치·규모·품격 면에서 원형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대구제일의 향토상징 관문으로써 금호강과 함께 대구시민들이 대자연의 운치를 마음껏 즐기는 곳이다.
대구시민과 외래관광객에게 관문의 좋은 경관을 보여주기 위해 2001.4.30부터 야간경관조명을 발산하여 우아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주(註)
성루(城樓) : 성문이나 성벽 위에 세운 건물
Category :
1/1, 총 게시물 : 1
  •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 관리자 | 유서깊은 유산물 | 2006-05-10 | 1489 hits
  • 소재지 : 수성구 만촌동 산90우리민족은 고래(古來)로 구릉과 산성을 방수(防守)의 요충으로 중시하여 각종 성(城)을 쌓았으나 평지에 성을 축조하는 것은 드물었다. 지방행정관서가 있는 곳의 평지에 축성된 대구 읍성(邑城)은 1590년(선조 23)에 처음 만들 때는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뒤 1736년(영조 12)에 돌로 다시 쌓아 석성(石城)을 만들었다. 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정문을 두었는데, 동문은 진동문(鎭東門), 서문은 달...  MORE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