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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재(德山齋)
관리자 | 2006-05-10 16: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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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수성구 시지동 76번지

덕산재는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아산인 덕봉 장자원을 위한 만묘소이다.
장자원은 감찰 우(芋)의 자(子)로서, 조선 성종조에 사마¹에 올라 만성참군에 이르렀다. 일찍이 덕행과 효행으로 사림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김종직, 도의와 교류가 있었다.
재실 중수기에 의하면 덕산재는 영조 17년(1740년)에 해붕공이 종족의 서당으로 곡계정사라 편액하였다가 그후 대흥동 속칭 '서당골'로 이건하여 부모 없이는 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효심을 가지고 학문에 정진하여 가문의 전통을 세우라는 뜻에서 이로재(履露齋)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덕산재라 편액한 것은 고종 7년(1870년) 경복공이 대흥으로 이건하고나서부터라고 한다. 1917년 현 위치로 다시 이건하였으며, 1978년 한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맛배 지붕이다.

주(註)
1. 사마(司馬) : 조선 때 병조판서를 이르는 말 사마시(司馬試)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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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산재(德山齋)
  • 관리자 | 유서깊은 유산물 | 2006-05-10 | 1371 hits
  • 소재지 : 수성구 시지동 76번지덕산재는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아산인 덕봉 장자원을 위한 만묘소이다. 장자원은 감찰 우(芋)의 자(子)로서, 조선 성종조에 사마¹에 올라 만성참군에 이르렀다. 일찍이 덕행과 효행으로 사림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김종직, 도의와 교류가 있었다. 재실 중수기에 의하면 덕산재는 영조 17년(1740년)에 해붕공이 종족의 서당으로 곡계정사라 편액하였다가 그후 대흥동 속칭 '서당골'로 이건하여 부모 없이는 나 또한 존재하지 않는...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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