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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효자 정려각(夏孝子 旌閭閣)
관리자 | 2006-04-21 16: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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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별 및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18호
소 재 지 : 수성구 만촌동 389-9

이 정려각 안에 있는 비석은 대구 경북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효자비 중의 하나로 고려 때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하광신(夏光臣)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정문(旌門)을 내려 세운 것이다.

하광신은 달성 하(夏)씨로 달성 하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 대도독이었던 하흠(夏欽)인데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정착하였다. 이후 그의 아들 하용(夏溶)이 고려를 침공하는 오랑캐를 무찔러 큰 공을 세우자 조정에서 달성군(達城君)에 봉했는데 이때부터 하씨들이 대구 부근에 많이 살게 되었다. 하광신은 달성군에 봉군된 하용의 손자로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의 효성에 관한 얘기는 많은데 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광신의 어머니가 몇 해째 중병이 들어 누워 있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아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치는 늦겨울에 병상의 노모는 갑자기 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효성이 극진한 광신이었지만 기가 찼다. 엄동설한에 어디서 복숭아를 구해온단 말인가? 광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복숭아를 구할 방법이 없어 마을 뒷산에 올라가 자기의 효성이 부족함을 한탄하고 있었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곁에서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호랑이 한 마리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호랑이는 덤벼들지 않고 자기 등에 올라타라는 시늉을 해 보냈다. 광신은 영문도 모른 채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호랑이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하여 어느 산골 외딴집에 도착하였다. 광신이 이상하게 여겨 불빛이 새여 나오는 집의 문을 두드리니 막 제사를 마친 제사장 위에 복숭아가 눈에 띄었다. 얼른 방으로 들어가 사정을 이야기한 광신은 복숭아 한 개를 달라고 간청했다. 광신은 주인이 주는 복숭아를 받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한 후 어머니에게 갖다 드렸다. 그 뒤 어머니가 간호의 보람도 없이 세상을 떠나자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3년간 지성껏 시묘(侍墓)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충성왕은 1327년 그가 살던 마을에 '효자 고려 이부시랑 하광신지려'(孝子高儷吏部侍郞夏光臣之閭)라는 정문(旌門)을 세우게 하였다.
정려각은 처음에 달성 하씨의 종산(宗山)인 수도산 부근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 이 정려비는 1781년 만촌동 형제봉 기슭에 중건하였으나 일제 때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헐려 현 위치로 다시 옮긴 것이다.

정문(旌門) : 충신 · 효자 ·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그 집 앞에 세우는 붉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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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효자 정려각(夏孝子 旌閭閣)
  • 관리자 | 문화재 자료 | 2006-04-21 | 1049 hits
  • 종별 및 지정번호 : 문화재자료 제18호 소 재 지 : 수성구 만촌동 389-9 이 정려각 안에 있는 비석은 대구 경북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효자비 중의 하나로 고려 때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하광신(夏光臣)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정문(旌門)을 내려 세운 것이다. 하광신은 달성 하(夏)씨로 달성 하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 대도독이었던 하흠(夏欽)인데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정착하였다. 이후 그의 아들 하용(夏溶)이 고려를 침공하는 오랑캐...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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