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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회 고모령 효 예술제 문예공모전 일반부 수상자 작품
suseong | 2013-09-13 14:05:26

<대상 - 최미애>

 

택배 왔다, 어머니가 왔다

 

딸네가 어떻게 사는 지, 한 번도 와 보지 못한 멀미 심한

노모를 대신해 매년 고등어 택배는, 비릿한 냄새로 집안을 살핀

 

가장 푸르고 싱싱할 때 낚여 누려야 할 자유는 다 버리고 한

평 남짓 어물전에서 한 생을 보낸 어머니, 고속도로를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달렸을 것이다

 

상자를 열자 간에 절어 일렬로 누워 있는 분신들, 염천에 흘린

땀까지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는데 춥다고 어머니 몸 웅크린다

 

한 마리씩 아껴가며 꺼내어지는 날, 불판 위에서 또 한 번 고통

을 겪어내고서야 고등어는 포말 같은 흰 접시위에 드러눕겠지

 

입을 크게 벌린 채 연신‘뭐 해 먹고 사노’물으시며, 살점이

다 뜯겨 나갈 때까지 당신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피붙이들

을 지켜보신다

 

발가락 얼어터지던 날도, 손가락 피 흘리던 날도, 척추가 내

려앉던 날도, 아플 수 없는, 절대 아파서는 안 되는, 썩은 속

다 들어 낸, 간 절인 속 일 수밖에 없었던 당신은, 그렇게 딸네

가 보고 싶었던 거였다

 

먹고 산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내가, 서툰 젓가락

으로 파도의 살점을 울컥 들춰, 딸아이 벌린 입안에 밀어 넣

는다

 

<최우수상 - 김건화>

 

황소자리, 어머니

 

코뚜레를 벗고서도

소신공양은 끝나지 않았는지

오늘은 사골 마디에서 꽃물 쏟아 놓으며

여물처럼 질긴 생을 풀어 놓는다

 

한 솥 곰탕을 끓이기 위해 불을 지피는데

뼛속에서 들끓는 울음소리 들린다

 

저 울음소리가 맑아지기 까지는

겹겹의 누린내 풍기는 시간들이 지나가야 한다

검은 거품 걷어내는데 반생을 보냈다 싶었는데

펄펄 끓는 불의 시간이 무릎을 달궈온다

 

그 동안 허기에 눈멀어 어머니를 우려 먹었구나

깊은 무쇠바닥에 가라앉은 어머니

구멍 숭숭 뚫린 화석 되는 줄도 모르고

내게 뽀얀 국물을 우려주고 계셨구나

 

불두화로 피어나신 어머니

뼈와 살 내어 주시고

생을 다 놓아버려야 갈 수 있는

 

밤하늘 별자리 황소자리

그 성운 속 가장 빛나는 어머니

 

<우수상 - 김애경>

 

상응相應

 

한때 해와 달을 품던 고사목

몸이 내어준 무성한 잎으로

고단한 바람을 앉혀주기도 했을 저 나무에

능소화 달라붙어 꽃 피웠다

 

그러나 지금은 잎 피운 흔적 없고

움푹한 혈관은 개미들에게 수직통로가 되고있다

 

잎은 버렸지만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몸의 보시

힘없이 아래로만 떨어지는 능소화 넝쿨인 나

앙상한 팔로 잡아 끌어주는

당신의 사랑법은 놀라웠다

 

나, 안구기증 서류에 서명하고 돌아오는 길

더위에 지친 여름 한 낮 인데

화르르 올라붙은 살구색 기쁨이여

 

살아있다고 다 사는 것 아니 듯

죽었다고 다 죽은 것 아니 듯

좀 더 먼 곳에서 꽃이 보일 수 있도록

나무 탑 위에 걸린 꽃을 거는 일로

내 여름이 덥지만은 않았다

 

<우수상 - 김영근>

 

막내

김영근

 

대전 국립묘지 현충원에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신 두 분의 묘가 서 있다. 한 분은 누님이시고 또 한 분은 자형되시는 분이다. 자형은 생전에 술을 많이 드셔서 누님의 속을 태우셨다. 이제는 한 곳에서 지내시니 한 시름 잊은 것 같지만 주고받는 말이 없으니 서운한 마음만 남아있다.

 

자형은 6․25 참전 용사로서 전투에서 두 눈이 실명이 되어 1급 상이용사로 판명 받아 연금으로 생활하였다. 실명으로 인한 정신 착란 증상과 삶에 대한 비관으로 연금은 술값 치르기에도 빠듯하였다. 건강에 대한 무신경으로 결국 간경화로 세상을 뜨시면서 대전 현충원에 잠들었다.

누님은 매일 술 때문에 가사에는 관심이 없는 자형을 대신해서 스스로 가장이 되었다. 공부시키고 키우기 위해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그 노고가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된다해서 생전에 매일신문사에서 주는 효부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 속앓이 하며 견디는 것도 한계가 있어 결국에는 췌장에 병을 얻어 세상을 버렸다. 죽은 후에도 부부의 인연이 이어져 현충원에 합장을 하게 되었다.

마침 대전에서 연수가 있어서 간 김에 인사를 드리고 오기로 하였다. 살아생전 누님은 꽃 기르기를 좋아하셔서 집안 마당 전체가 화단이었다. 자형은 막걸리를 아주 즐겨 잡수셨다. 그러니 두 분을 찾아뵙자면 꽃과 막걸리를 준비해야 한다. 현충원 가는 도로 주변을 살펴보아도 매점 간판이 안보이고 또 꽃 가게도 없었다. 구내매점에 가니 벌써 업무를 마감했다. 다시 정문을 나와서 헤매어도 막걸리를 살 수가 없었다. 겨우 소주, 쟁반, 쥐포안주, 젓가락을 사고 주변의 꽃 가게에는 조화만 있고 생화는 팔지 않아서 사지 못했다.

15블록에 도착했다. 전 때에 와본 일이 있기에 묘포가 한 눈에 들어 왔다. 자형과 누님이 나와서 나를 힘차게 껴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 형제는 한 핏줄임을 직감했다.

누님과 나는 20살의 차이이다. 어릴 때 같이 다니면 보시는 사람들이 아들이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막내 동생이라고 나를 소개하면 너무 닮았다고 모두 깜짝 놀랐다. 나이 차이가 많아서 인지 누님은 막내인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셨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60리 길을 걸어서 통학하는 것이 힘들다고 살림살이를 아껴서 자형 몰래 돈을 주는 때가 많았다. 요즈음 갔으면 200원이 별 가치가 없지만 버스 삯이 5원, 10원씩 할 때였으니 꽤 큰돈이었다. 그 돈으로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어 피곤한 몸을 달랠 수 있었고 때로는 군것질로 손 풀빵을 사먹을 수 있어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행복도 있었다. 그 때 어린 생각이었지만 나중에 내가 꼭 갚아드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갑자기 그 옛날이 생각나 마음이 울컥해졌다. “막내가 못 살까봐 걱정이다, 공부 잘하여라.” 용돈 받던 생각이 다시 나면서 빈 묘표만 있는 허허벌판 묘지에서 혼자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한 참을 울고 나서 상석위에 술을 올려놓았다. 절을 4배했다. 곁을 보니 향이 통에 그대로 있었다. 향을 피우는 것을 잊고 성의 없게 엎드려 절만 하였다. 향 7개를 뽑아서 피우고 다시 절을 두 번하였다. 쥐포를 뜯어서 술잔에 담그고 좌우, 앞뒤의 묘비 8곳에 3모금씩 술을 따라 흩었다.

생전에 자형이 주점에 앉아서 지나가시는 분들을 모두 청하여 나누어 마셨다. 그 모습을 생각하며 여기 묘비아래 지하 묘소에서도 모두 정답게, 의좋게 지내고 친한 친구가 되어서 잘 지내시라고 빌었다.

묘비 근처에 그 좁은 공간에도 잡풀이 나 있었다. 누님의 성격으로 화분에 잡초가 생기면 꽃이 잘 자라지 못할까봐 매일 손질을 했을 것이다. 여기 묘역은 누님께서 평생사시는 집인데 잡풀이 나 있다니. 자주 못 와 본 것이 가슴 아프고 마음 한 구석에 또 죄를 지은 것 같았다. 손으로 하나하나 만져가면서 누님의 마음에 들도록 잡풀을 뽑았다. 햇빛을 많이 받고 잔디가 잘 자라도록 손톱에 흙이 박혀도 하나하나 정성을 다하여 뿌리째 뽑았다. 여러 가지 옛 생각에 잠겨 있느라고 꾸무럭거리다가 날씨가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시간이 지나가 버린 것이 더욱 아쉬웠다.

묘역을 떠나 어둠 속을 혼자 걸어 나오니 두 어른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내년 현충일에는 생질들과 같이 오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힘없이 발걸음을 정문 쪽으로 향했다. “나라를 위해 두 눈을 빼앗겨 평상시 밝은 세상 속 시원하게 보지 못하시고 혼자 다니지 못하여 보호자가 필요한 시간이 많았는데 이제는 누님 손잡고 마음대로 놀러 다니세요. 아버지께서 끼시든 돌 안경 가져가신 것 끼고 좋은 경치 마음 놓고 많이 보러 다니세요. 누님은 집안 뜰의 잡초는 하나도 남김없이 뽑아드릴 터이니 집안 화단관리 걱정은 하지 마시고 따뜻한 잔디 옷 입으시고 고이 잠드소서!”

 

<장려상 - 김경구>

 

택배 상자

 

김경구

 

산골마을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

가을이면 늘 보내오는

택배 한 상자

 

지붕 낮은 집

아직도 찔레 울타리로 그대로

꽃무늬 몸뻬 즐겨 입는 어머니

몸도 작아지고 키도 줄었다

 

아버지 먼저 보내고

산비탈 아래

혼자 텃밭 일구며

산을 가족 삼아

버섯이며 산나물

산딸기 산감 산밤을 딴다

 

택배 상자 속 작은 쪽지엔

산은 오래 전부터 많은 것을 주기만 하는데

사람들은 자꾸 산을 괴롭히고

보이지 않게 야금야금 갉아 먹는다고

한숨이 담겨 있다

 

열린 택배상자 속에서

밤과 감 도토리묵 산나물

푸른 산 향기가 푸른 소나무 향과 어울려

일렁일렁

온 집안을 꽉 채운다.

 

<장려상 - 박인자>

 

소낙비

 

읍내 오일장 서는 이른 새벽, 어머니는 안개 속에서 열무를 뽑고, 호박 덤불 사이에서 빠끔 고개 내민 호박도 따고, 파까지 뽑아 새끼줄로 꽁꽁 묶었다. 숨 한 번 쉬지 않고 물 한 대접 들이 킨 어머니는 똬리를 놓고 붉은 함지에 한 아름 채소를 담고 시골길을 걸었다.

가끔은 막내인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한 시간 넘게 가는 길이 지루한 길이었지만 어머니가 사주시는 센뻬와 눈깔사탕에 졸졸 따라나서곤 했다

 

천막도 없이 땡볕을 고스란히 맞고 장터에 앉아 있으면 정수리가 뜨끔뜨끔 아예 감각이 사라졌다. 온 몸을 뱀이 꽉 감은 듯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날 때도 있었다. 자라목이 된 어머니는 연방 땀을 훔치며 신문지로 채소를 덮었다 떼었다를 반복했다. 운이 좋은 날에는 금세 어머니의 채소가 팔리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축 쳐진 채소처럼 어머니의 몸도 길게 누워 산 그림자를 잡아당겼다.

 

집으로 오는 길, 입안에서 숨통이 막힐 것 같은 눈깔사탕이 달싹거리고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걸으셨다. 그러나 갑자기 검어진 하늘. 두려움에 엄마 곁에 바짝 붙으면 이내 두두둑, 하고 떨어지던 소낙비. 어머니 이고 가던 붉은 빈 함지를 내 머리를 가려주고 어머니는 고스란히 소낙비를 맞으셨다. 그러다 난 냅다 달려가 토란 잎 두 장을 꺾어 어머니를 씌어 주었다. 아버지 먼저 보내고 딸 셋 키우던 어머니는 소낙비와 함께 애써 참았던 눈물 흘리시는 걸 난 느낄 수 있었다. 소낙비와 함께 후련하게 씻기어질 고단한 삶. 어머니의 붉게 꽃물 번진 눈 속에 내가 보였다.

<장려상 - 한상희>

은행나무 근황

 

알츠하이머 병동 가는 길

서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

한쪽 몸은 시멘트로 때워졌고

울컥울컥 누런 가래를 토하고 있다

 

그는 원래 흙냄새 풀풀 나는

내 고향 상원리 당산나무였으나

개발에 떠밀려 이곳에 옮겨졌다

 

자욱한 자동차 매연 속 숨 몰아쉬기 십 수 년에

이젠 머리털조차 숭숭하다

 

도포들 허리 굽혀 제 지내던

정월 대보름의 기억은 아득해지고

시집오는 새 색시 문안 받던

당당한 공손수 시절은 꿈만 같은지

재재거리는 새 Ep 품어주던 두툼한 가슴은

먹장구름 잔뜩 들어앉았다

 

은행나무 두 바퀴 돌아 병실에 들어서자

막힌 말문 손끝은 살아서 꼼지락거린다, 우리 어무이

야학 며칠 만에 떼신 언문으로

색 바랜 잎의 근황을 묻는다

 

생각비운 어무이가

난데없이 은행나무가 궁금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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