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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 전설과 예악   1, 전설
suseong | 2011-07-21 17:10:56

제5편, 전설과 예악

1, 전설

♦하광신의 효행

효행에 얽힌 전설은 전국에 많이 남아있으나 수성구 만촌동에 세워진 하효자의 정려각은 고려 충숙왕 때 정려된 효자각으로 대구 경북 일원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수성지역의 아름다운 풍속의 정신적 뿌리가 깊고 먼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달성 하씨는 본래 중국 송나라 대도독 벼슬에 있었던 하흠이 고려에 정착한뒤 그의 아들 하용이 고려를 침공한 오랑캐를 무찌른 공로로 달성군에 봉해지면서 대구지역에 살게되었다. 하광신은 그의 손자로 벼슬이 고려조 이부상서에 올랐는데 특히 효성이 지극해 지역민의 칭송을 받았고 그의 효행은 호랑이도 감동해 그를 도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광신은 어머니가 몇해째 중병이 들어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있는 어느 늦겨울 날 어머니께서 갑자기 복숭아가 먹고싶다고 청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한다. 얼어붙은 천지, 어디에서 복숭아를 구해올지 너무나 막막하고 안타까웟던 것이다. 하루 종일 궁리를 해봐도 아무런 방도가 없어 마을 뒷산에 올라가 “나가 효성이 없어 복숭아를 구하지 못하는 구나”하고 한탄만 하고 있는데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골돌히 복숭아 생각만 하고있던 참에 곁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언제 왔는지는 모르나 송아지만한 호랑이가 옆에 서있는게아닌가. 깜짝 놀라 당황한 나머지 도망을 가려했으나 오금이 절려 벌벌 떨고있는데 호랑이는 광신에게 덤벼들 기색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의 앞에 엎드려 꼬리를 흔들며 등에 올라타라는 시늉을 하지않겠는가. 광신이 얼떨결에 호랑이 등에 올라타니 호랑이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렸던 것이다.

귓전에 찬 바람이 스치기를 한참, 호랑이가 달리기를 멈추었는데 광신이 호랑이 등에 납작 엎드려 눈을 떠보니 깊은 산속이었고, 저만치 외딴집에서 불빛이 새나오고 있었다. 광신이 기이하게 여기면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으로 다가가서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주인이 방문을 여는데 방안에는 이제 막 제사를 마쳤고 제사상 위에는 그가 간절히 찾았던 복숭아가 놓여있지않은가. 주인에게 인사를 마치자말자 광신은 사정을 얘기한 뒤 복숭아 한개를 달라고 간청했다. 집주인은 그 애기를 듣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우며 제사상에 올린 복숭아의 내력을 이야기하면서 몇 개를 그에게 주었다. 주인은 해마다 집주변에 자생하는 복숭아를 몇접씩 따다가 식구들 끼리 먹고 그 중 싱싱하고 좋은 것은 골라 저장해 두었다가 부모님 제사에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느해 같으면 남겨둔 복숭아가 겨울을 지나는 동안 대부분 썩고 겨우 한두개 성한 것을 제사상에 올렸을 뿐인데 올해는 쓸만한 것이 여러개나 돼 아렇게 많이 제사에 쓸 수 있게됐다면서 하효자를 위해 하늘이 도운 것같다고 감탄했다. 그는 주인에게 거둡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다시 호랑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복숭아를 어머니에게 드렸다.

어머니는 하효자의 정성어린 병간호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났고 너무나 큰 슬픔에 잠긴 하효자는 어머니 무덤옆에 움막을 짓고 3년간 정성껏 시묘살이를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나라에서 그가 살던 마을 앞에 정려를 세우게하고 그의 자손에게 부역을 면해주도록했다.

♦황금동의 “못안”과 “봉천(奉天)”

이 전설은 황금동에 있었던 못에 얽힌 얘기다. 이 지역에는 옛날에 손홍량이란 분이 살았는데 그의 사후 450년 쯤 되던 시기에 그의 후손중에 늦게사 아들을 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 아들이 장가갈 나이가 되어 여기저기 색시감을 구하던 차 뒷산 너머 마을에 김아무개의 셋째 딸이 예쁘다는 말을 듣고 매파를 놓았던 것이다. 마침내 양가는 혼사를 정하고 결혼날을 잡았다. 양가는 사주단자를 주고받고 혼례준비에 분주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부턴가 마을에서는 수상한 소문이 돌기시작했다. 그 색시감이 일직부터 낫지못할 몹쓸병에 걸려 위급한 지경에 있다는 것이다. 신랑댁에서 부랴부랴 수소문을 해보니 소문대로 사실이었다. 분주하게 혼레준비를하던 신랑댁에서 색시집에 파혼통보를 보냈는데 장가간다고 들떠있던 아들이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그만 몸져 눕고말았다. 손씨댁은 늦게 아들을 두어 장가를 보내게된 기쁨은 사라지고 아들마저 병환이 들었으니 이만저만 심란한 일이아니었다. 색시집 역시 온갖 정성을 드려 키운 딸을 혼레라도 올려야겠다고 결혼일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같이 청천벽력같은 파혼통지를 받고보니 실망과 충격이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불행은 이쯤해서 끝나지않았다.

비록 색시감을 보지는 못했으나 파혼 충격에 몸져누웠던 신랑은 비관한 나머지 마을 앞 못에 몸을 던져 죽고말았던 것이다. 그후 마을 사람들은 못에 빠져죽은 가련한 신랑의 넋을 위로하기위해 못가 느티나무 아래서 굿을 해주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들이 죽고난 뒤 못물이 흙탕물로 변햇던 것이 굿을하고나니 못물이 다시 깨끗해졌다고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못을 “못안”이라 불렀고, 이 마을을 “청호(청호)마을”이라고 불렀다.

한편 파혼당했던 처녀는 신랑될 사람이 못에 빠져죽엇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뒷산에 올라가 하늘을 쳐다보고 한없이 슬피울다가 그곳 못에 몸을 던져 죽고말았다. 이 처녀가 하늘을 우르러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 죽었다고해서 그 곳 사람들은 처녀가 살았던 이 마을과 그 못을“봉천(奉天)”이라했다는 것이다.

♦고모령(顧母嶺)

이 고개는 옛날 남편을 잃고 두 형제를 키우던 어머니에 얽힌 전설을 안고 있다. 어느날 한 스님이 가난하게 살고있던 이 가정에 찾아와 이 집이 못사는 까닭은 전생에 덕을 쌓지못했기 때문이라면서 덕을 쌓으려면 주위에 흙을 쌓아 산을 만들라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들 형제가 흙을 쌓아 산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오늘날의 모봉, 형봉, 제봉 등이 그렇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산을 쌓는 과정에서 형과 동생이 지나치게 경쟁심을 가지는 바람에 서로 시샘을하고 싸움까지 하게되자 그의 어머니가 너무나 속이 상하고 화가나 집을 나와버렸다고한다. 하염없이 길을 걷다가 지금의 고모령인 산등성이에서 자식들이 살고있는 마을을 돌아보았다는데 그 때 어머니가 자식을 못잊어 돌아보았다는 뜻으로 고개 이름에“돌아볼”고(顧),“어머니”모(母)라는 한자음을 부쳐 고모령이라했다고 한다.

또다른 전설로는 일제강점기에 경산지역에 아들 형제를 기른 홀어머니가 살았는데 아들 형제가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대구의 형무소에 갖히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보고 싶어 대구형무소로 가서 면회를 하고 해질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오곤했다는 것이다. 되돌아 오는 길에 아들 있는 감옥 쪽으로 자꾸만 뒤돌아 보다가 이 고개 마루에 올라 여기를 넘으면 대구쪽이 보이지않을 것같아 황혼을 배경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아들이 있는 곳으로 보고 또 보았다고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사연을 알게된 지역민이 이 고개를 고모령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해방직후 46년 향토 가수 현인이 부른 대중가요“비나리는 고모령”이 선풍적인 인끼를 얻으며 고모령은 일약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일제가 남긴 피폐한 사회와 가난에 찌든 살림살이 때문에, 아니면 독립운동이나 정치적 이념 때문에 가족을 돌볼 수 없어 어머님과 이별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세태의 정서를 배경으로 쓴 노래말이 온 국민에게 감동을 준 것이다. 이 노래는 지금까지 대구를 대표하는 노래의 하나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있는데 “고모령”은 우리의 마음속에 “어머니”하면 뭉클하게 가슴속에 강물처럼 흐르는 전설로 굳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바위

고산1동 욱수동 마을에 있는 소바위는 주인을 살린 소의 의행(義行)을 기린 바위에 얽힌 전설이다. 옛날 이 마을에 살았던 한 농부가 부근에 있는 자산(紫山)기슭에 자기 집의 소를 몰고가 소에게는 풀을 뜯어 먹게하고 자신은 풀을 베고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호랑이가 나타나 농부를 해치려했다. 농부는 너무나 놀라 풀베기를 중단하고 황급히 소 있는 곳으로 달려가니 소도 풀을 먹지 않고 호랑이와 싸우기 시작했다. 농부도 정신을 가다듬어 소를 응원하니 소가 더욱 힘을 내어 호랑이에게 사납게 달려들어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그러기를 몇시간, 온 몸에 땀이 비오듯 하는 싸움끝에 드디어 소가 이기게 되었고 호랑이는 도망을 쳐 주인이 구출된 것이었다. 그후 소와 호랑이가 싸운 곳에 큰 바위가 하나 생겨났는데 마을 사람들은 주인을 구출해준 의행을 한 소를 기려 이 바위를 소바위라 불렀다고한다.

♦용두산(龍頭山)

앞산괴에서 동쪽의 산성산 정상에서 신천을 따라 뻗어있는 산줄기로 남구 봉덕동과 수성구 파동을 경계지워주는 산을 용두산이라한다. 이 산을 용두라고 부르는데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이 산이 용의 형태를 닮았다고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고 옛날에 용이 살았다고 그렇게 부르기도했다고한다.

또한 전설에는 이 지역에 암수 두 마리의 용이 사이좋게 살았는데 수컷이 소식도 없이 종적을 감추자 암컷이 수컷을 못내 잊지못하고 기다리다 지처 몸이 굳어버리면서 산줄기로 변했고 마을 사람들이 이 산을 용두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형제봉(兄弟峰)

만촌 2동의 남부주차장 뒤편에 크고 작은 두게의 산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주민들은 이 두산봉우리를 형제봉이라 부른다.

이 봉우리를 형제봉이라한 것은 옛날 이 지역에 살던 힘센 장사 남매가 산쌓기 내기를 해서 생긴 봉우리란 전설 때문이다. 오빠와 누이 동생이 산쌓기 내기를 시작했는데 오빠는 저고리 옷섶으로 흙을 날라 산을 쌓았고 여동생은 치마폭으로 흙을 쌓아 산을 쌓앗다는 것이다. 내기방법은 해가 뜨기 시작해서 해가 질때까지 하루 동안 누가 더 높이 쌓는가를 겨루는 것이다.

흙을 나르는 방법이 오빠는 옷섶으로 나르고 동생은 치마폭으로 나르기 때문에 동생이 내기에서 유리했고 해가 늬엿늬엿 넘어갈 무렵에는 오빠산 보다 동생산의 높이가 더 높았다. 지게생긴 오빠는 심술이 나 동생산을 발로 짓밟아버렷고 이 대문에 동생산은 뭉퉁하게 낮아져버렸다고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끝이 뾰죽하고 높은 산을 형봉, 다른 뭉퉁한 산을 제봉이라했고, 이 제봉을 누이동생의 것이라해서 매봉(妹峰)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산 아래 골짜기를 형제봉골이라 불렀다.

♦수성1가 느티나무

옛 대륜고등학교 서남쪽편에 있는 수령 약250년-400년생의 네 거루 느티나무에 얽힌 전설이다. 이 나무는 그 동네의 당산나무로 음력 정월 14일이면 해마다 동네주민들이 모여 이 나무아래 제수를 차려놓고 풍년과 마을의 재난을 막고 주민들의 병환이 없도록 기원하는 동신제를 지내왔다고한다. 그런 내력으로 이 나무는 동내의 수호신이었고 평소에도 이 나무에대한 주민들의 외경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신성시하는 이 나무가 일제강점기에 일인병사들에게 수난을 당하면서 신통력을 보였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당시 어느 한 여름, 대구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80연대의 일부 병력이 이 나무 부근에서 훈련을 하다가 땀을 식히기위해 나무그늘에 쉴 때 생긴 일이다. 일부 일병들이 이 나무의 줄기를 발로 차고 나무위에 걸터 앉아 가지를 꺽기도했는데 이를 보다 못한 동네 노인이 “이 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이니 무례를 범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일병들은 그 노인의 말을 비웃으며 그따위 미신을 누가 믿느냐며 “그 나무가 정말 신목인지 아닌지 한번 시험해보자”며 나무아래 쌓여있던 보리짚더미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동민들은 겁에 질려 그냥 그들의 만행을 지켜만 볼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불은 느티나무에 번지지 않고 불을 지른 일본병 쪽으로 불길이 옮겨져 그 병사가 그 자리에서 사지를 비틀며 개거품을 문체 즉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나무를 사랑하고 아끼는 우리선조들의 지혜를 엿보게하는 전설이다.

♦효자 하잠동(孝子 河潛同)

지산초등학교 정문앞 큰 느티나무 옆에 서있는 돌비석에 세겨진 “효자 하잠동”의 효행은 너무나 눈물겹다.

하잠동은 집안이 몹시 가난해 끼니조차 잇지못할 정도였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자신이 살고 잇는 범물동 뒤산에서 나무를 해서 60여리나 떨어진 대구장(지금의 서문시장)에 내다팔아 그날 그날의 생게를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날 노경에 병환이 들어 앓아 눕게된 어머니가 떡이 먹고싶다고하자 하루 종일 굶은 잠동이 나무를 팔아 떡을 사오는데 이 당나무까지 오자 허기가졌다. 눈은 발목까지 빠지고 추위는 너무나 맵찬데 허기마저 졌으나 어머니의 소원인 떡을 먹지 않고 그데로 안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게된 것이다. 때마침 어디선가 까마귀가 한 마리 하효자의 머리위에 날아오자 하효자는 까마귀를 보며“까마귀야, 까마귀야, 이 떡을 우리 어머니께 갖다드려다오”하며 숨을 거두었다고한다. 나라에서 이를 알고 효자각을 짓고 비를 세웠는데 세월이 흘러 비각은 허물어지고 비석만 남았던 것을 이 느티나무 옆으로 옮겼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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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 전설과 예악   1, 전설 suseong 2011-07-21 0 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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